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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2장 1-12절

마가복음
작성자
두란노서원 섬김이
작성일
2015-06-23 12:41
조회
4630

마가복음 2장 1-12절 본문(클릭하세요)

1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4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8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개역개정)

1 And when he returned to Capernaum after some days, it was reported that he was at home. 2 And many were gathered together, so that there was no more room, not even at the door. And he was preaching the word to them. 3 And they came, bringing to him a paralytic carried by four men. 4 And when they could not get near him because of the crowd, they removed the roof above him, and when they had made an opening, they let down the bed on which the paralytic lay. 5 And when Jesus saw their faith, he said to the paralytic, “Son, your sins are forgiven.” 6 Now some of the scribes were sitting there, questioning in their hearts, 7 “Why does this man speak like that? He is blaspheming! Who can forgive sins but God alone?” 8 And immediately Jesus, perceiving in his spirit that they thus questioned within themselves, said to them, “Why do you question these things in your hearts? 9 Which is easier, to say to the paralytic, ‘Your sins are forgiven,’ or to say, ‘Rise, take up your bed and walk’? 10 But that you may know that the Son of Man has authority on earth to forgive sins”—he said to the paralytic— 11 “I say to you, rise, pick up your bed, and go home.” 12 And he rose and immediately picked up his bed and went out before them all, so that they were all amazed and glorified God, saying, “We never saw anything like this!”
(ESV)

전체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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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6-27 02:25

    이 본문의 초점을 중풍병자를 침상에 달아 내린 "네 사람"에게 맞춘 설교를 자주 들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구원하셨으니, 우리도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면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전도 대상자를 구원하실 거라는...

    물론 구원을 향한 열정과 간절함은 분명 소중한 것이겠지만, 이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 않나 나름 생각해 봅니다.

    마가복음의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는 1:1의 말씀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이 종말론적 선포의 말씀이 이번 중풍병자의 기록에서 구체적인 사건으로 펼쳐지고 있음을 봅니다.

    1장을 통해서 예수님의 권세 (authority)에 관해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그 권세가 어떤 것인지 예수님께서 이적들을 통해 조금씩 그 비밀을 드러내시는 그림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 버림받았던 (outcast) 중풍병자는 침상에 실린채 완벽하게 무력한 모습으로 예수님께 실려옵니다.
    예수님 앞에 지붕을 뚫고 내려진 중풍병자는, 무시하고 내쫓아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을 버림받고 몹쓸 사람이었겠지요.
    조금만 스쳐도 부정타는 중풍병자인데...

    아무 희망이 없는 그 중풍병자에게 유일한 소망은 예수님이었겠지요.
    중풍병자는 자신의 온 몸을 꼼짝 못하게 하는 병의 "권세"에서 벗어날 유일한 소망을 이 예수라는 사람에게 걸었겠지요.
    오직 자신에게만 소망을 두는 그 중풍병자의 "믿음"을 예수님께서는 보셨을테고...

    완벽한 절망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종말론적 선포를 하십니다.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Son, your sins are forgiven." (v.5)

    중풍병자에게 "작은 자" 혹은 "아들"이라는 호칭을 부르며 죄 사함을 선포하시는 이 순간에 다시금 1:1의 말씀을 떠 올리게 됩니다.

    (쓰면서 갑자기 울컥해지네요...)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하는 서기관들에게, 예수님께서 친히 이 기적의 의미를 말씀하시지요.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v.10)

    (여기서 인자 "the Son of Man"에 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나눔이 있을 것으로 기대를 합니다.)

    물론 서기관들은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나중에 예수를 잡아 죽일 모의를 하게 되지요.
    귀신도 알아보는 예수님과 그의 권세를, "말씀"을 맡았던 서기관들은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다시금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권세에 대한 종교 기득권자들의 방해와 모함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는군요.


  • 2015-07-09 02:39

    2장의 그분의 사역의 시작은 1장과 좀 다르지요.

    같은 병 고침의 사역이지만 예수께서는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하십니다.
    1장에서는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혹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명하셨지만
    2장에서는 같은 병 고침의 사역에서 죄사람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는 매우 의도적인 말씀이셨습니다.

    당연히 이런 말씀으로 인해 서기관이 "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언급한 것은 당연한 표현이었습니다.

    예수의 이 말은 분명 신성 모독에 관계한 언급입니다. 인간의 죄 사함의 선포는 오로지 하나님 외에는 어느 피조물로 할 수가 없는 말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는 당신이 단순한 피조물이 하늘의 권세를 가진 인자임을 표현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가지고 몇 가지 교훈을 생각을 해 볼 수가 있습니다.

    1. 예수를 만나기 위해 어떠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주님 앞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요청하는 자세가 매우 중요합니다.
    개인적으로 여러 지체에게 주님께서 역사하신 현장을 목도하면서 그들의 간절한 자세를 항상 보았습니다.
    단순히 안타까움을 호소하기 위하여 혹은 지적은 충족을 위하여 또는 습관적인 태도로 말씀 나눔의 장에서 참여한
    지체에게는 구원의 역사를 보지 못하였고 진정한 마음으로 참여한 자에게 주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주신 것을 목도하면서
    진정 말씀과 구원의 간절함을 가진 백성들은 나눔에 참여하는 태도와 마음에서 다른 지체와 구분됨을 보게 됩니다.
    예수께서 계시는 집에 벌써 많은 사람이 가득하였지만 지붕을 뜯어 내려간 4 명의 사람과 중풍병자만 놀라운 역사의 현장의 주인공이
    됩니다.
    우리는 단지 예수 주변에 많이 둘러 싼 무리인지 아니면 주께서 믿음을 보시고 구원의 역사를 보여주신 4 명의 사람과 중풍병자인지
    깊게 고민을 해야 합니다.

    2. 예수의 그의 병 고침의 능력을 그가 하늘의 권세를 가진 인자임을 보이는 사역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인자란 개념은 다니엘서에 언급이 되지만 예수 시대에 갈릴리 지역에서 확대 해석되어 종말에 하늘의 권세를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란 개념을 가진 단어 입니다. 당시에 갈릴리 지역에서는 많은 사람들은 인자의 오심을 기대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는 인자란 단어를 유대지역 사역보다 갈릴리 지역 사역에서 많이 사용하십니다.
    (좀 더 자세한 인자의 개념의 이해를 위하여 하늘 창고의 "인자 개념과 초기 디아스포라 단상"을 참조 하십시오.)
    예수의 사역에서 그분의 상황에 관한 선포는 단순한 즉흥적인 반응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4 명의 사람과 중풍병자의 현장에서는 다른 곳과 달리 죄 사함을 선포하셨습니다.)
    이러한 반응에 서기관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고 (이 서기관의 반응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예수는 서기관을 꾸짖지
    아니하시고 그분의 하늘로부터 온 권세로 병 고침을 보이고 자신이 바로 계시에 말씀하신 인자이심을 보이십니다.
    예수는 단지 이러한 생각을 한 서기관뿐 아니라 다른 이에게도 자신의 하늘로 부터 온 권세를 보이시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하시면서 물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의 말씀은 마치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그의 서신서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말씀을 연상하게 합니다.
    이는 하늘로부터 온 권세를 표현하기 위함입니다.

    현재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이러한 하늘의 권세를 경험하고 성령의 구원의 역사를 지체가 경험하는 공동체인지 아니면 단지 무리가 종교적 행위로 모이는 공동체인지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죽고 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에서 나온 4 명의 사람과 중풍병자의 구원을 위한 간절한 신앙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지 다시 한번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해야
    합니다.


  • 2015-07-24 03:19

    간절함과 믿음...
    요근래 몇개월간 말씀 묵상중에 개인적으로 많이 와닿는 주제입니다.

    얼마전에 읽은 박관준 장로님의 전기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려 주실 때에는 그 받을 사람의 마음을 먼저 감찰하신다."

    하나님께 드리는 간구와 기도....
    제 중심에 진정 가난한 마음으로 은혜를 갈구하는 자세가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 2015-07-24 21:05

    저는 요즈음 저 자신이나 동료 그리스도인의 삶에 예수께서 함께하시는 증거를 보고 싶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온다는 것은 제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관념적인 신앙’과는 판이한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구원에 대한 믿음의 갈망으로 예수 때문에 ‘영과 육’ 모두가 구원받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말씀을 보며 생각하는 것은 믿음은 갈망이라는 것입니다. 나의 희망은 오직 예수의 은혜에 달려 있다는 절체절명의 갈망...

    저와 주변의 아픔이 극심한 지금 오히려 ‘조용기식’의 기복신앙이 그립습니다.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예수께서 우리의 ‘삶’도 구원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권세를 가지신 예수는 우리의 ‘몸’을 회복시킬 권세도 가지고 계십니다.
    제 마음은 저와 제 주변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싶지만...

    분명 구름은 있으나 아직 비는 내리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