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왕국에 관한 여러 논의가 있지만 어떻게 기독교 역사 발전 과정에서 계승 발전되었는지
많은 지체가 잘 모르고 있다. 더욱 여러 천년 왕국의 주장으로 기독교 역사에서
많은 혼란과 함께 여러 미혹의 주장을 하는 자들이 있었다.
여기에서 천년 왕국의 신학적 논의보다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천년 왕국의 개념이
어떻게 생성되었고 전개되어 발전되었는지를 간략하게 논의하였다.
해당 내용은 요한 공동체 사경회에서 나눈 재림에 관한 강의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이 글과 함께 재림에 관한 논의를 계속하여 나눌 예정이다.
후에 여러 참고 문헌이 기록된 강의 원고를 공개할 예정이다.


기독교의 천년왕국의 개념은 요한계시록 20:1-8,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말씀에서
현재 공동체를 핍박하는 사탄을 결박하여 무저갱에 잠그고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기독교 순교자들이 죽음에서 첫 번째 부활을 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의 나라에서 왕 노릇을 한다.
그리고 천 년이 끝날 무렵 사탄이 놓여 마지막 전쟁을 하여 패배하여
마침내 불과 유황 못(지옥)에 던지우고 그리고 모든 죽은 자가 부활하여 심판을 받는다.(20:21)
그리고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된다.(21:1)”란 종말에 과정에 마지막 우주의 심판 전에
잠시 그리스도가 지배하는 평화로운 기간을 의미한다.

사실 천년 왕국의 언급은 성경에서 요한 계시록 20장에만 기록된 종말론 역사의 한 과정이다.

유대의 묵시 문학인 희년서, 에녹서, 바룩 2서, 에스라 4서에서
오랫동안 소망한 새 왕국의 여정에서 안식을 제공하기 위한
중간 휴지기 명목으로 특별한 시기와 장소가(intermediate waiting place)언급되었다.
(예로 에스라4서 7:28-29 에서는 천년이 아닌 400년의 안식을 위한 시기가 언급되었고
일반적으로 유대 묵시 문학에서는 휴지기의 안식 장소는 지하로 표현되었다.)

학자들은 이런 유대 묵시 문학의 전통이 천년 왕국의 배경 동기로 생각하고 있다.

초기 기독교 문헌에서는 성경 외에 알렉산드리아 지역에서 130년경에 저술되었다는
비정경 문서인 바나바 서신서에 처음으로 천년 왕국의 기록 되어 있다.

많은 학자는 천년 왕국의 기원을 요한 계시록이 작성된
현재 터키 지역인 프리기아 (Phrygia)지역에서 왔다고 보고 있다.
(참조:Encyclopedia of Early Christianity 2nd Edition By Everett Ferguso,p.238).

4 세기 초의 기독교 역사가 유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
그의 저서 교회사(Ecclesiastical History)에서 활동한 기독교 영지 주의자이고
유대 기독교인 케린투스(CerinThus)가 100년 경에 요한 계시록을 사용하여
천년 왕국의 소망을 설교에서 가장 일찍 표현하였다고 작성을 하였다.
그렇기에 알렉산드리아 지역의 일부에서는 한때 요한 계시록을
그의 저서를 오해하여 요한 계시록의 정경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케린투스에 관하여 좀 더 언급하면 2세기 중 후반에 활동한
리용지역의 교부 이레니우스(Irenaeus)의 그의 저서인 “이단 논박(Adversus Haereses)”에서
그는 예수가 동정녀에 탄생하지 않았고 영적 존재였기에 모든 고난에서 자유로웠다“고 저술을 하였다.
그리고 그는 사도 요한과 대적의 관계에 서 있다고 그의 글에서 언급하였다.

현재의 터키지역에서 2세기 중반에 요한 계시록을 중심으로 계시의 사역을 중심으로 하였던
몬타니즘은 요한 계시록 21장의 새로운 예루살렘이 프리기아 지역의
작은 도시인 페푸자(Pepuza)에 임하여 천년 왕국이 시작된다고 주장을 하였다.

이렇게 초대 기독교 문헌을 연구에서 천년 왕국의 전파가 프리기아 지역 중심으로 활발하게 시작됨을 알 수가 있다.

2세기에 사도 요한의 제자로 전승된 파피아스(Papias)과 폴리갑 (Polycarpus)은
요한 공동체의 전승을 따라 천년 왕국을 주장하였다.
이에 반하여 앞에서 언급한 유세비우스는 파피아스가 지향하는
천년 왕국이 너무 물질적 가치와 위안을 지향한다고 하여 비판을 하였다.

그리고 2세기 중반까지 활동한 교부인 순교자 저스틴(Justine Martyr)은
그의 책 “트라이포(Trypho)와 대화”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부활을 소망하지만,
의인을 위한 보상의 왕국을 위해 부활과 심판 이전에 회복된 새로운 예루살렘에서
평화의 시절을 소망한다“라고 작성하여 고난받는 의인의 보상을 위하여 천년 왕국의 소망을 표현하였다.

185년경에 리옹의 교부 이레니우스는 이 땅에서의 회복을 너무 은유적으로만 해석하지 말라고 주장하였다.
의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위하여 수고하였기에 그 행복에 관하여 보상을 받을 시기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을 하였다.
이 수고로 의로운 왕국은 창조의 모습으로 회복이 되고 이렇게 보상을 받는 기간은
주의 성품에 온전하게 참여하는 준비의 단계가 될 것이라고 주장을 하였다.

이와 같이 2세기의 교부들의 천년 왕국은 심판이 오기 전 의인을 위한 보상을
임시 기간으로 해석하였고 물질적 행복의 가치가 많이 언급되었다.
이렇게 교부들이 확연하게 천년 왕국 등 묵시적 주제에 관심을 보인 것은
심한 기독교의 박해와 함께 예수 재림의 지연이 구체화하였기에 이런 과정에서
순교자의 박해 고난에 관한 보상으로 활발하게 천년 왕국의 주제가 공동체에서 논하게 되었다.

그리고 3세기 초에 이런 천년 왕국의 묵시적 주제가 좀 더 구체적으로 성서 주석서 형태로 표현되었고
신학적 형태로 교리화가 시작되었다.

3세기 초의 로마의 히폴리투스(Hippolytus)는 204년경에 기독교 역사에서 처음으로 주석서를 작성하였는데
그 주석서가 다니엘 주석서이다.
이 다니엘 주석서에서 그는 창조 후 여섯 번째 천년기가 끝난 후
즉 그리스도 탄생 500 년 후에 세상의 끝날이 온다고 주장하였고
새로운 우주질서(새 하늘과 새 땅)가 구성되기 전에 천 년 동안 안식이 제공된다고 해석을 하였다.

이에 반하여 같은 시기에 활동한 오리겐(Origen)는2세기의 교부들이 주장한 요한 계시록의 천년 왕국에서
시작된 물질적 보상이 유대적 해석의 관점에서 나온 오류라고 주장하여
성경 해석에 있어서 은유적 해석을 강조하면서 요한 계시록의 진위성에 의심을 했다.

그는 초기 기독교 교부 중 처음으로 반 천년왕국(Anti-Millenarianism)을 주장한 교부였다.

이에 반하여 4세기 무렵에 성경 학자로 활동하면서 라틴어 성경인 불가타(Vulgate) 성경을 번역한
제롬(Jerome,345-420)은 요한 계시록 해석에 있어서
일부는 문자적 해석과 다른 부분은 영적으로 해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요한 계시록의 해석 방법론을 제시하였고 이 방법은 지금까지 성서 해석자 사이에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교부들의 성서 해석의 발전으로 예수의 재림과 여러 종말론 주제에 관하여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의 관점에서 해석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동시대에 활동한 위대한 신학자 힙포의 어거스틴(Augustinus of Hippo:354-430)은
처음에는 초대 교부와 같이 천년왕국 관점을 가졌지만,
후기에 그의 저서 신국(City of God)에서 우리는 역사의 마지막 세대에 살고 있다고 확신을 하면서
그렇기에 종말의 특별한 징조를 구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을 하였다.

즉 마지막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그 호기심에 관하여 사도행전 1: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인용하면서
어떤 자세한 정보가 필요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렇기에 요한 계시록의 천년 왕국이 교회의 시대와 같다고 해석을 하였고
모든 천년 왕국에 관한 추측을 거절하였다.

이렇게 제롬과 어거스틴에 의하여 서방교회의 반 천년왕국의 개념을 통합하여 완성했다.
동방 교회의 오리겐에서 시작한 반 천년 왕국의 개념은 서방 교회의 제롬과 어거스틴에 의하여 완성되어
서구 신학의 종말론 해석의 기초를 조성하였다.

그 후 교회에서 성서의 종말론적 해석에 있어서 미래 예언의 관점보다
영적, 도덕적, 교회사적 관점에서 문자적 해석을 하였고 성경 본문의 종말론적 상징과 표현에 관하여는
역사의 사실에 기초하여 해석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