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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7. 진정한 교제

빌레몬서 배경 이해
로마 제국의 노예 제도:
유대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글에 의하면 로마 제국에
대항한 유대 1차 독립 전쟁의 말기에(기원 후 73년) 마지막 항쟁 장소인
이스라엘의 남쪽 지역의 마사다란 요새에서 항쟁의 지도자인 엘리아자르 벤 야이르(Eleazar ben Yair)는
노예의 삶을 선택하지 않고 . . . 자유인으로 고결한 죽음을 선택할 것이다” 라고 외쳤다.
이는 당시의 노예의 삶은 죽은 자유인의 삶보다 더 비참함을 한 마디로 잘 표현한 외침이었다.
일반적으로 노예는 전쟁의 포로나 경제적 이유로 혹은 산적이나 해적의 납치로 공급되었다.
또는 중죄를 범한 죄수에게 처한 형벌로 노예가 되기도 하였다.

고대 로마 제국 초기에 로마 제국의 중부나 남부의 인구의 1/4이나 1/3이 노예였다.
로마 제국의 원로들은 이러한 많은 수의 노예의 폭동이 두려워, 비록 부결되었지만,
자유인과 노예의 복장을 구별하는 법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노예는 황제노예, 시청이나 성전에서 고용한 노예, 일반 가정이 고용한 노예로 구분되었다.
일반적으로 한 가구당 2-3명의 노예를 가지고 있었으며 경제적 능력에 따라 고용한 노예의 수는 증가하였다.
당시에 노예는 법적으로 인간의 취급을 받지 못하고 단순하게 주인의 재산으로 분류되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생사의 권한도 주인이 가지고 있었고 물건처럼 매매도 할 수가 있었다.

시대가 다르지만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를 “살아있는 도구”라고 언급을 하였다.
종교는 노예에게 인간으로 삶을 평가받는 유일한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그렇기에 노예가 종교 사역자의 삶을사는 것이 가능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자유인과 노예가 같은 취급을 받지는 못하였다.

노예 신분에서 해방하는 방법은 주인의 권한으로 자유인으로 신분 변경외는 없었다.
도망을 하여 성전의 보호처로 피신을 할 수가 있으나
이 경우는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닌 단순히 새로운 주인을 찾는 방법이다.

도망한 노예가 다시 주인에게 잡히면 얼굴에 특정한 표시의 문신이 새겨지고
걸쇠나 차꼬를 채워 운신을 제한했으며 탄광이나 노예선으로 보내기도하였고
심지어 십자가 형이나 광장에서 짐승에서 던져지기까지 하였다.

고대 사회는 노예없이 작동이 되지 않았기에 노예 제도의 존폐 문제를 언급할 수가 없었고
단지 노예에 대한 주인의 태도에 관하여 논하기만 하였다.

고대 사회에서 유일하게 노예 제도를 포기한 집단은
유대인 종파중 엣센파(Essenes)와 테라퓨테(Therapeutae) 종파였다.
이들 종파의 삶은 원시 공산체의 모습이었기에 노예제도가 필요가 없었다.

일반적으로 노예가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어도 자유인 출생인 자보다 사회적으로낮은 취급을 받았다.

고대 기독교와 노예 제도:

로마법에 의하면 도망간 노예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는 행위는 비난받는 행위이기에
빌레몬서에 소개된 바울의 오네시모에 관한 대우의 요구는 당시의 역사적 배경에서는 매우 파격적이다.

초기 기독교 저서중 노예의 해방 문제에 구체적이고 긍정적 표현으로 언급된 작품은
고린도 전서 7:21 과 2세기 초의 속사도의 한 명인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Ignatius of Antioch)가
동시대의 서머나 교회의 감독인 폴리갑( Polycarp)에게 보낸 서신서(Ad Polycarp)이다.

그렇지만 당시의 역사적 배경에서 초기 기독교는 노예제도 폐지를 주장하지는 않았고
악한 영이 지배하는 타락한 사회의 자연스러운 한 단면으로 해석을 하였다.

1세기 중반의 기독교 공동체에서 작성된 디다케(Didache)에는
다음과 같이 신약 성경의 노예에 관한 대우의 교훈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같은 하나님께 바라는 이들인, 네 하인이나 여종에게 모질게 명령하여,
그들이 양편 위에 계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일이 없게 하라.
너희, 하인들은 주인들을 하나님의 사자로 여기고 존경과 두려움으로 그들에게 복종하라. ” (디다케 4:10-11)

여러 외경이나 초기 기독교 문헌 에 의하면 기독교 주인과 노예의 삶에 관한 언급이
사회 계급적 충돌 없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는 초기 기독교가 앞의 설명과 같이 노예 해방과 같은 급격한 사회 변혁보다
당시의 사회 제도를 인정하는 모습으로 사역을 진행하였다고 추론을 할 수가 있다.

2세기 초 속사도인 서머나 교회의 감독인 폴리갑( Polycarp)은 전승에 의하면
노예 출신으로 서머나의 어느 과부가 소년 폴리갑을 노예로 사서
그가 똑똑하여 후에 자유인으로 해방시켜 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전승의 교훈으로 빌레몬서의 오네시모가 안디옥의 감독인
이그나티우스의 에베소 교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명시된
안디옥의 감독 오네시모와 동일인이라고 해석을 하기도 한다.

3 세기 초 로마에서 활동한 교부인 히폴리투스(Hippolytus)는
빌레몬서의 오네시모의 교훈과 달리 3 세기 초에 기독교 주인이 도망간 노예를 잡아
주인의 이름과 주소가 작성된 걸쇠를 채우고 걸쇠에
나는 주인을 버리고 도망갔기에 나를 잡아 주세요”문구를 작성하여
참혹한 일터인 디딜방아로 보내어 처벌하였다고 기록을 하였다.

빌레몬서와 같이 도망 노예의 주인에게 선처를 호소하는 서신은
고대 로마 제국에서 소수의 지성인 사이에서 작성되기도 하였다.

빌레몬서 분석

빌레몬서는 335 문자로 구성되었고 바울 문서중 어떠한 신학적 교리가 없는 유일한 문서이다.

내용의 형식은 기독교 주인과 도망간 노예의 선처를 구하는 내용이지만
초기 기독교의 전통적인 구속사의 형식인 중보, 회심, 용서, 회복의 주제가 서신서 전반에 걸쳐 작성되어 있다.

빌레몬의 노예인 오네시모란 이름은 에베소에서는 아주 대중적인 이름 중 하나였다.
바울에 의하여 전도된 오네시모의 평가는
빌레몬서에서 유익하고 (11절), 섬긴다(13절)라고 매우 긍정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구원 전에는 무익(11절)과 불의(18절)라는 단어로 표현되어 있다.

오네시모의 이름은 (골로새서 4:9)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언급된 것을 보아 골로새 지역의 노예였다.

골로새 지역의 공동체는 에바브라(23절)가 세웠고
아마 에바브라를 통하여 바울은 빌레몬을 소개 받았다고 학자들은 생각을 한다.

빌레몬서의 작성 장소는 바울이 에베소(52-55 기원 후)나 로마(60-62 기원 후)의
옥중에서 작성하였다고 추론되었다.
현재는 골로새 지역과의 적절한 거리(22절에서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란 문구에 유추하여)를 고려하여
에베소라고 학자들은 생각을 한다.

오네시모와 바울의 첫 만남이 만일 옥중이라면 오네시모는 도망 노예의 신분이었기에
바울이 갇힌 감옥과 구분되었기에 불가능하다고 추론이 된다.
그렇기에 오네시모와 바울의 첫 만남은 오네시모가 도망자의 신분으로
바울이 옥중에 있을 때 외부에서 방문하여 교제를 가졌다고 생각이 되어진다.

바울은 빌레몬 공동체에 서신서를 보내어 빌레몬이 오네시모에게 갖고 있을 수 있는
분노와 배신감의 감정에 관하여 조심스렇게 접근하였고
공적으로 그의 체면을 세우면서 상호 관계를 새로 갖도록 권면을 하였다.

영국의 신학자 제임스 던 (James D. G. Dunn)은 그의 빌레몬서 주석서에서 옥중에 갇힌 바울이
서신 검열관의 검열때문에 로마법을 벗어나 도망 노예의 긍정적 대우를 적극적으로 권할 수가 없었다고 보았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예수 안에서(8,20,23절), 주안에서(16,20절), 그리스도께(6절) 표현을 사용하여
오네시모와 새로운 교제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것을 권면하였다.
바울에게 오네시모는 아들(10절), 심장(12절), 사랑 받는 형제(16절)와 같은 지체였다.

바울은 그의 서신서 빌립보서 2:1-5에서 그리스도의 교제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바울은 빌레몬을 동역자, 형제와 복음에 빚진 자의 관계로 언급을 하였다.(1,7,17,19절)

본문 해설:

1절: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9,10,13,23절), 에베소서(3:1,4:1),
빌립보서(1:7,13,14,17), 골로새서 (4:18)

2절: 압비아는 빌레몬의 아내로 아킵보는 빌레몬의 아들로 학자들은 추론한다.
특히 아킵보는 골로새서 4:17,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하라”에 의하면
골로새 공동체의 주요 직분을 가진 자로 언급이 된다.

4절: 바울은 빌레몬을 위하여 항상 중보하고 있다고 언급을 하고 있다.
특히 4절의 헬라어 문장 구조는 6절의 문장과 직접 연결을 갖는다.

5절: 5절은 유대문학의 독특한 문장 구조인 키아즘(chiasm) 구조를 가지고 있다.
모든 성도에 관한 네 사랑은 기독교의 교제는 배타적이 아님을 알 수가 있다.
요한1 3:10,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6절: 6절의 문장 구조는 4 절의 “기도 할 때에 너를 말함은”에 의존하여 해석이 된다.
진정한 교제는 공동체에 있는 하나님의 선을 깨닫고 결국 그리스도의 구원의 비밀에이르게 한다.

7절: 한 지체의 삶의 모습이 공동체에 깊은 영향력을 제공한다.

8-12절: 오네시모의 회복

8-10절: 바울은 빌레몬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명령이 아닌 사랑으로 오네시모에 관하여 간구를 한다.
이러한 도망 노예를 위한 간구는 당시의 문화적인 관점에서는 매우 벗어난 행동이었다.
헬라인들은 노예는 단지 재산이고 운명에 의하여 당연히 그렇게산다고 생각을 하였다.
바울이 오네시모를 당시의 사람과 달리 생각하고 대우하는이유는 바울의 신학적 관점이다.

바울은 골로새서 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에 의하면 예수 안에서 구원을 받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에 지금까지의 사회적 신분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였다.
기독교 공동체의 교제의 시작은 골로새서 3:10의 정신으로 가져야 한다.

11절: 무익하였다. 바울은 오네시모(유익하다)란 이름을 가지고 언어 유희로 서술하였다.
바울은 20절에 기쁨(혜택)이란 헬라어 onaimen단어를 사용하여 언어적 유희를 보였다.
당시에 이러한 이름은 농장에서 동물에게 주는 이름이었다.
노예의 이름은 노예상이나 노예 주인이 작성을 하였다.
구약의 신명기 23:15-16에 도망한 노예에 관한 율법적인 말씀이 있다.
종이 그의 주인을 피하여 네게로 도망하거든 너는 그의 주인에게 돌려주지 말고그가
네 성읍 중에서 원하는 곳을 택하는 대로 너와 함께 네 가운데에 거주하게 하고 그를 압제하지 말지니라

12절: 심장(splangchna)란 단어는 7,12, 20절에 사용되었다.

14절: 사도는 모든 과정이 주안에서 선한 열매로 맺기 위하여 빌레몬의 승락없이 함부로 이 과정을 처리하지 않았다.

15절: “잠시 떠나게 된 것은” 이러한 성경의 수동적 설명은 하나님의 능동적 역사를 의미한다.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란 표현은 오네시모는 이제 소유가 아닌 한 영적인 결합을 한 형제로 대우하라는 의미이다.

16절: “종과 같이 대하지 말고”의 문자적 의미는 “그가 사랑하는 형제가 되었기에
그는 더 이상 너의 노예가 아니다”란 뜻이다.
만일 빌레몬의 집에 또 다른 기독교인 노예가 있다면 오네시모와
어떠한 형평의 관계로 취급해야 하는지를 바울은 그 스스로 결정하게 하였다.

17절: 바울은 단지 오네시모와 빌레몬의 화해 중계자 역할뿐 아니라
오네시모에게 “사도의 대표”란 직분을 주어서 단지 한 형제가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동역자의 위치로 격상을 시켜 교제를 가질 것을 권면하였다.

18절: 사실 어떠한 금전적 손실이 있었는지 구체적 언급은 없다. 일반적으로
노예는 도피자금으로 주인의 돈을 훔쳐 도주를 한다. 바울과 같이
이러한 도망 노예의 금전적 손실까지 주인에게 보상하는 경우는 바울 시대에 거의 없었다.

19절: 친필로 작성한다 : 대필이 아닌 바울의 권위를 표현한 글이고 책임을 언급한 표현이다.

20절: 감탄문 형식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과정이 선을 이루고 평안하기를 바울은 간구하고 있다.

21절: 바울은 빌레몬이 그에게 순종하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순종할 것을 권했고
오네시모가 자유인이 되면 주인의 관점이 아닌 복음을 위하여 주안에서 유익하다고강조를 하고 있다.

22절: 바울은 처음으로 빌레몬에게 방을 준비하라고 직접적 요구를 하였다.

24절: 동역자 데마, 누가(24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로마서 16:3),
디모데(로마서 16:21, 데살로니가 전서 3:2), 디도 (골로새서 8:23)
아리스다고(골로새서 4:10, 사도행전 20:4) 데마(골로새서 4:14, 디모데후서 2:4)

노예에 관한 성경의 언급

골로새서 3:22-4:1, 디모데전서 6:1-2, 베드로전서 3:8, 고린도전서 7:21-24, 디도서 2:9-10
바울은 모든 이에게 공동체에서 신분의 차별을 두지 말라고 권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7:17-24, 12:13, 갈라디아서 3:28, 골로새서 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