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작년에 성탄절 성경 말씀을 준비하여 작성한 강의록입니다.
강의록에 첨부된 숫자는 각주의 번호입니다.
각주의 내용은 이 글에서 첨부하지 않았습니다.
첨부된 각주의 내용과 함께 PDF 파일로 강의록을 읽으실 분은 강의록을 내려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각주가 첨부된 강의록 내려받기:다운로드

들어가는 글:

성탄절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매년 맞이하는 성탄절은 신자나 불신자에게 연말을 맞이하는 아쉬움과 함께
새해를 준비하는 기쁨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을 수가 있다.
혹 신자에게는 온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는 날로 기억을 할 수가 있다.

각 교회에서는 예수 탄생의 성극과 성가대의 특별한 합창을 준비하는 분주함으로 성탄절을 맞이한다.
간혹 고통을 받고, 가난한 이웃과 함께하며 성탄절의 참뜻을 기리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각 가정은 크리스마스 트리 밑에 작은 선물을 준비하며 온 가족이 즐거움으로 연말의 여유를 만끽한다.
이렇게 성탄절은 교회와 교회 밖에서 연말에 주요한 기념일로 기억이 되고 있다.

성경에서 작성된 예수 탄생의 기록은 당시에 독자에게 어떤 교훈을 제공하기 위하여 작성되었는가?
단순히 구원자 예수의 탄생을 기록하기 위한 연대기적 시작의 표현인가?
아니면 어떠한 특별한 영적 교훈을 제공을 위함인가?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교회 생활에서 성탄절에 관한 초대 교회의 영적 교훈을 들은 적이 없었다.
오늘 말씀의 나눔의 자리는 이러한 귀한 성탄절의 초대 교회의 영적 교훈을 선포하고 기념하기 위함이다.

1. 계시의 완성으로 맞이하는 성탄절

마태복음 관점

마태복음 1:1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선포하면서 말씀이 시작된다.
이는 하나님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관계에서 계시하신
창세기 22:17-18 말씀1의 성취가 바로 예수의 탄생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3:162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씨를 단수로 해석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언약의 성취자로 해석을 하였다.
또한, 다윗은 후손임을 강조한 이유는 사무엘하 7장3에서 선지자 나단을 통하여
다윗에게 계시한 말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이 계시의 말씀이 예수의 탄생으로 성취되었기에 마태복음 저자는 구약의 언약 완성으로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였다.

예수 탄생 전에 작성된 솔로몬의 시편(Psalms of Solomon)이란 글에서는
메시아로 다윗의 아들 오심을 찬양하고 있다.
또한, 유대인이 매일 3번씩 기도 중에 읽는 기도 문서인 18 기도문,
쉐모네 에스레(Shemoneh Esrei)의 14 기도문에서
영광의 거처인 시온에 당신의 의로운 메시아 다윗가의 왕권에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다윗의 후손에서 메시아가 온다고 믿었다.

마태복음 1장의 족보 형태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3개의 구분으로 14세대씩 서술하였다.
이러한 기록의 이유에 관하여 학자들은 히브리어 다윗(דוד)의 수신학적 숫자의 합이 14이기 때문이라고 한다4.
이렇게 마태복음의 저자는 예수의 족보에서 계시의 성취자인 예수를 강조하기 위하여
족보의 구성을 특별하게 구성을 하였다.

누가복음 관점

누가복음에서는 제사장 사가랴와 마리아에게 계시를 전하는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난다1.
천사는 사가랴에게 “너의 간구가 들렸다“라고 말하면서2 그의 간구의 결과로 계시를 전달한다고 하였다.
자신의 오랜 간구에 의하여 하늘의 응답을 들었지만 사가랴는 회의론자의 관점에서 응답을 다음과 같이 하였다.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누가복음 1:18)
이러한 모습은 구약에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보인 반응과 비슷하다3.
참고로 당시의 유대인의 관점에서 하나님이 직접 하시는 역사가 3가지 있다고 생각을 하였다
(1. 비를 오게 하시는 능력, 2.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 3. 여인의 태를 여시는 능력).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 나타나 예수의 수태고지를 선포하였다4.
마리아는 사가랴가 계시를 받고 보인 반응과 달리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누가복음1:38)라고 믿음으로 응답을 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구약에서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자식이 없어 하나님 앞에서 간절히 구할 때
제사장 엘리를 통하여 말씀을 받고 보인 행동과 비슷하다.5
이렇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때 신자의 자세는 믿음으로
그 말씀을 받아야 한다는 교훈을 누가복음의 예수 탄생 기록에서 배울 수가 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영원한 왕국이 야곱의 집에서 나올 것을 선포하였고6
이는 민수기 24장에서 이방 예언자 발람을 통하여 말씀하신
야곱의 가문에서 한 별이 나온다는 말씀의 성취7를 이루신 말씀이다.

유대인은 이 말씀을 기반으로 별을 메시아의 상징으로 이해하고 있었다8.
또한, 이 별의 표현은 마태복음의 동방 박사가 별의 인도를 보고 예수를 알현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9한 것이고 초기 기독교에서도 이러한 별의 상징성을
예수와 연계하여 계시록에서는 새벽 별을 예수라 칭하였다.10

또한, 천사의 계시는 이사야 선지자의 계시11 성취를 이루는 말이었고,
마리아 찬가와 사가랴의 찬가 역시 선지자의 계시를 성취를 선포하는 찬송이었다12.
사가랴의 찬송에서 그는 예수와 탄생과 함께 세례 요한의 탄생도
자신의 조상의 언약을 기억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표현을 하였다13.

복음서 전체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 칭하며
예수를 언약의 성취자로 인정을 하였다.14
그렇지만 예수 자신은 자신을 다윗의 후손이라 사람들의 반응에 대하여
다윗의 후손이 아닌 다윗의 주라고 선포하셨다.15

바울과 히브리서 관점

또한,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예수가 다윗의 혈통임을 강조하면서
예수를 구약의 메시아 언약의 성취자로 표현1하였다.

15장에서는 이사야의 계시의 성취자로 예수를 언급을 하였다.2
또한 갈라디아서3에서 바울은 창세기 22:18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의 계시” 너의 씨에게서“에서 씨를 단수로 해석하여
예수를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씨로 해석을 하였다.

히브리서 1:1-2에서는 예수를 선지자를 통한 계시의 완성자로 역시 표현을 하였다.
더구나 히브리서에서는 종말론적 메시아가 시편 110:44를 해석하여
멜기세댁의 제사장 반열에서 나온다는 쿰란문서의 해석5을 인용하여
예수가 멜기세댁의 영적 전통을 계승한 종말론적 제사장으로 표현을 하였고,6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한 계시7도 예수를 통하여 온전하게 이루어졌다고 선포하였다.8

이렇게 신약의 대부분은 예수의 사역을 구약의 계시 완성의 상징으로 표현을 하였다.
그렇기에 성경에서 예수의 탄생과 사역의 기록은 단순한 인물에 관한 기록이 아닌 구약에서
그의 사람을 통하여 백성에게 주신 주님의 계시의 신실성을 증거가 되는 기록이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예수의 탄생이 영웅의 인물 탄생의 기록이 아닌
하나님의 섬세하신 언약 성취의 은혜를 기록한 증거이다.
이렇게 예수 탄생의 기쁨은 하나님의 계시 소망을 가진 자가 은혜를 기다린 감격의 순간이다.
종말론적 신앙을 가진 그의 백성만이 경험하는 진실한 기쁨과 감격의 날이다.

베들레헴

베들레헴은 예수의 탄생 기록에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예수의 탄생지로 기록되었다9.
베들레헴은 구약에서 나오미와 보아스의 고향이다10. 그렇기에 룻기의 지리적 배경은 베들레헴이었다.
이곳에서 룻은 보아스를 만나 다윗 왕의 조상이 되었다11.
그렇기에 다윗 왕도 이 지역에서 태어나서 자랐다.12
일반적으로 구약에서 다윗 왕의 궁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다윗의 동네라고 칭하였지만13,
베들레헴을 언급할 때도 있었다14.

선지자 미가는 하나님의 때에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이 나올 것이라고 예언을 하였다.1
그렇기에 예수의 때에 베들레헴에서 메시아가 태어난다고 대다수 유대인은 믿고 있었다.2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베들레헴에서 예수의 탄생에 관한 기록에서 다른 설명이 있다.3
마태복음에서는 단순하게 베들레헴에서 예수가 탄생하였다고 기록을 하였으나
누가복음에서는 좀 더 자세하게 장소와 환경이 설명되었다.

예수의 탄생이 여관에서 태어나신 장면으로 기록되었다.
현대 신학자의 좀 더 깊은 연구 고증으로 예수의 여관 탄생 기록이 도전을 받고 있다.

누가복음 2:7에서 여관이라 기록된 단어의 헬라어는 카탈루마(κατάλυμα)로 기록되었다.
이 단어의 원래 의미는 접대용 숙박 장소로 해석이 되었고 성경에서
누가복음 2장과 함께 예수가 유월절 준비를 위하여 제자에게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하라고 하신 말씀에서 기록되었다.4

이 말씀에서는 분명 여관이란 의미가 아닌 단순히 접대용 숙박 장소, 즉 다락방을 의미한다.
여관이란 숙박을 위하여 돈을 지불하는 장소를 언급하는데
누가복음 10장에서 예수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말씀에서
짐승에 태워 주막(영어 성경에서는 여관을 의미하는 것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 갚으리라 하였으니“(누가복음 10:34-35) 기록되었다.

영어 성경에서는 누가복음 2:7에서 사용한 여관을 의미하는 inn이란 단어로
누가복음 10장에서 똑같이 표현하였다.

선한 사마리아 비유의 말씀에서 기록된 여관의 헬라어는 예수 탄생에서 사용된
카탈루마란 단어가 아니고 판도하얀(πανδοχεῖον)이란 단어이다.

이 단어가 집주인에게 돈을 지불한다는 의미에서 정확하게 여관이란 뜻이다.
이렇게 카탈루마란 단어가 여관으로 처음 해석된 이유에 관하여
킹 제임스 영어 성경의 번역 당시의 해석 오류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을 한다.5

이러한 새로운 해석을 관점을 적용해보면 마리아는 요셉을 따라 다윗 가의 고향인
베들레헴의 친척이나 지인의 집이 아닌가 해석을 할 수가 있다.
이러한 해석에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예수 탄생 장소인 베들레헴의 상황 설명은
커다란 상이점이 보이지 않는다.

천사의 찬양과 목자

예수가 장로들의 유전6이라고 언급한 유대인의 구전 율법인 미쉬나(Mishnah)에서
희생제물로 사용될 양이 아닌 일반 양은 광야에서만 방목할 수 있다고 기록을 하였다.7
유월절 희생제물로 사용될 양은 이러한 방목의 제한 조건에서 벗어나 일반 지역에서 한 달 동안 방목을 할 수가 있다.
그렇기에 베들레헴에서 천사를 만난 목자는 일반 목자가 아닌 유월절 양을 돌보는 성별(聖別)된 사람이었을 것이다.8
이러한 하나님 앞에서 성별된 목자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예수의 탄생을 찬양하였다.

조상으로부터 계시된 약속이 이루어졌다고 하나님 앞에서 성별된 목자에게 천사가 나타나 선포하였다.
얼마나 놀라운 장면인가?
드디어 그렇게 기다린 계시의 완성 선포가 그들의 앞에서 하늘의 능력으로 나타났다.
성탄절을 기쁨을 맞이하는 자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 앞에서 성별된 자들이었다.

목자 앞에 나타난 천사의 찬양은 다음과 같았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누가복음 2:14)
이 말씀의 후반부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에 관하여 크게 두 가지 해석이 있었다.

첫째는 이 평화를 누리는 대상은 온 인류를 의미한다는 해석이다.
그리고 두 번째 해석은 선택된 자들에게 이 평화가 적용된다는 해석이다.
이 해석에 관하여 초대 교부의 해석을 잠시 살펴보자.

4세기에서 5세기 초까지 활동한 교부 제롬(Jerome)의 저서
“주님의 탄생에 관한 글에서(On the Nativity of the Lord))”
하늘에는 다툼이 없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만 드리고 땅에는 매일의 삶의 (영적) 전쟁에서 평화를 누리고 있다.
누가 이 평화를 경험하는가?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에게 실제 이 평화가 있는가?
이 질문에 관한 명확한 답은 평화를 누리는 사람의 자격이다.
오직 선한 사람에게만 이 평화를 경험할 수가 있다.
다시 말하면 예수 탄생의 비밀을 깨닫는 자에게만 이 평화가 누릴 수가 있다.”

5세기경에 알렉산드리아 대주교로 활동한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로스(Cyril of Alexandria)는
누가복음 주석서(Commentary on Luke)에서
땅의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에 반대되는 위치에서 욕망으로 가득 찬 모습으로 하나님께 대항하는 자이다.
예수께서 이러한 적대자의 관계를 끊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하셨다.
그렇기에 그는 우리의 평화이다.
믿음으로 의롭게 여김을 받고 꾸짖음 없이 거룩하게 되리라.
적대자 인간이 예수로 인하여 한 새로운 사람이 된다.”1

8세기 시리아 지역에서 활동한 수사, 다마스쿠스의 요한(John of Damascus)은
기뻐하는 사람을 인류로 해석을 하였다.2

루터와 함께 개신교 운동을 시작한 칼뱅은 그의 누가복음 주석서3에서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의 해석을 두고
합리적 성서 해석 방법으로 하늘과 땅의 대립 구조를 분명하기 위하여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을 온 인류라 해석을 하였다.
그는 “사람 중”에서 사용된 헬라어 전치사 en의 설명에서 among보다 toward로 해석을 하였다.

이렇게 해석한 이유는 문법적 설명으로 헬라어 전치사 en이 여러 뜻으로 해석될 수 있기에
본문에서 하늘과 땅의 대상을 향한 대조를 확실하게 하려고 이렇게 번역을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였다.
결국, 칼뱅은 그의 주석서에서 on earth peace, among men good-will
(땅에서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이란 전통적 해석을 이런 이유로
on earth peace, good will toward men (땅에서는 기뻐함을 받은 (모든)사람에게 평화) 해석을 했고
이 전통이 지금 대다수 누가복음 2:14의 주석서의 기본이 되었다.

최근 연구에서 예수 당시에 급진적 종말론 주의자 사이에서 읽힌 쿰란 문서와 비교하여
누가복음 2:14의 해석에 명확한 흐름을 찾을 수가 있었다. 후반부의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와 유사한 표현이 쿰란의 많은 문서에서 발견되었다.4

이러한 연구에서 누가복음 2:14 후반부의 해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유로운 선택의 은혜를 받은 백성이 명확한 해석임이 밝혀졌다.1

천사의 계시의 선포를 듣고 목자들이 보인 모습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누가복음 2:15-20)

이러한 목자의 모습을 7세기 영국의 수사 베다(Bede)는 그의 복음서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해석을 하였다.

베들레헴의 목자는 하늘의 능력으로 그들이 깨달은 숨겨진 비밀에 관하여 침묵하지 않았다.
그들은 할 수 있으면 누구에게 이 계시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교회 내 영적 인도자는 이러한 계시의 말씀을 듣도록 특별하게 소명을 받았다.
그렇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비밀을 대중에게 선포하거나 성경에서 발견한 놀라운 사실들을
청중에게 전함으로 그들에게 놀라운 (영적) 충격을 제공할 것이다.”2

나가는 글

초대교회가 예수의 탄생에 관하여 우리에게 주는 영적인 교훈은 그분의 계시를 받고
종말론적 소망을 두고 기다리는 그의 백성은 주의 때에 하늘의 즐거움을 누리는 은혜를 경험한다는 말씀이다.

이렇게 계시의 성취를 경험하는 은혜를 받은 주의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뛰놀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 앞에서 의인으로 칭함을 받는다3.

온전한 성탄절의 기다림은 이러한 세상의 백성과 달리 계시의 완성을 소망하는 종말론 삶을 사는
하나님 백성만이 누리는 아주 귀중한 축복이고 설렌 마음이다.

오늘날의 그의 백성에게도 예수 탄생 때 목자와 그의 백성 시므온과 안나가 경험한
기쁨과 함께 평안함4과 종말론의 역사를 경험5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