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된 말씀
요사이 마가복음을 다시 읽으면서 하나님 나라에 관한 생각을 끊임없이 자문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구원에 관한 성경에서 말씀하는 내용과 우리가 생각하는 구원이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우리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가장 기본적 이유는 구원이라고 말한다.
구원이란 단어가 구약에서는 주로 원수의 핍박과 어려움에서 주의 백성을 해방을 표현하는 단어로 사용하였다.
속량이란 단어도 이러한 구원관을 포함하는 단어이다.
원수의 핍박에서 해방을 제공할 자가 바로 구원자이고 이스라엘 백성은 이런 구원자를 주님의 권세를 가진 자
즉 메시아,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 선지서를 통하여 깨닫게 되었다.

구약에서 시편 51:14,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에스겔 37:23, “내가 그들을 그 범죄한 모든 처소에서 구원하여 정결하게 한즉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말씀과 같이 죄에서 구원의 개념이 일부 나오지만,
전체적으로는 신약과 달리 죄에서 해방보다 현실의 어려움에서 해방을 나타내는 단어로 구약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시편과 에스겔서에서 나온 구원의 말씀은 장차 신약에서 사용될 구원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는 종말론적 관점의 구원관의 선포이었다.
신약에서는 원수의 핍박과 지배를 단순히 현 세계의 물질적 세계관을 초월하여
영적인 관점으로 새롭게 해석을 하였다.
그렇기에 신약에서 구원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과정이라고 해석이 되었다.

통시적 관점에서 구원은 악한 지배로부터 해방을 의미하고 생명을 얻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 과정은 깨달음이나 자각 등 여타 종교적 득도의 개념이 아닌 구원자,
즉 하늘의 권세를 가진 자의 능력으로 해방되어 하나님의 지배에 놓이게 되는 과정을 말한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구원은 단순히 개별적이고 종교적인 구원이란 개념이 아닌
절대자의 권세에 의하여 해방의 상태에 놓인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구원에 놓인 자는 하늘의 지배, 즉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하게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은 유대인과 초대 기독교인에게는 하나님 왕국의 법이었다.
유대인은 구약의 율법을 그들의 실제 삶의 법률로 해석을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있는 자는 율법에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였다.

구약의 구원관은 물질적 세계관에 기초한 구원이었기에
진정 그들은 영이신 하나님의 왕국의 지배를 바르게 받을 수가 없었다.
예수는 성령의 세례를 그의 백성에게 주어 영의 하나님을 그의 백성이 올바로 알고
그의 나라에 순종하고 그분의 뜻을 진정 따르기를 원하셨다.

내가 단지 천국에 가기 위하여 구원을 받는 것은 인간의 관점”이다.
하나님의 관점은 “피조물이 죄에서 해방되어 주의 은혜로 그의 백성이 되는 상태”를 말한다.
예수는 요한복음 3:5,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성령으로 새롭게 탄생하는 과정이 하나님 왕국의 백성임을 선포하셨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이다.

정리하면 구원은 내가 나의 삶의 고민과 종교적 깨달음으로 새로운 존재가 되는 과정이 아닌
온전하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과정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들어 온 자는 당연하게 그의 말씀과 뜻에 순종하게 된다.
그 과정은 말씀과 뜻을 선택하거나 불완전하게 순종하는 자세가 아니다.
그 순종은 우리가 이 땅에서 육의 한계를 가지고 있기에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지만
끝내 하나님 말씀과 뜻에 온전하게 순종하는 자세로 수렴하는 삶을 지향하게 되어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검증하기 위하여 나의 본성과 전혀 다른
하나님 말씀과 뜻을 온전하게 순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잠시 흉내를 낼 수는 있으나 시간과 환경의 영향으로 그것은 거짓으로 판명된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온 자는 우선 그의 지배에 놓여 있다는 자신을 확인할 수가 있다.
그렇기에 하나님 말씀과 뜻이 진리임을 고백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외부에 증명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과정이 아닌
하나님 왕국의 권세에 놓여있기에 말씀과 하나님의 뜻이 나의 삶과 생각의 기초가 될 수밖에 없다.

쉬운 예로 당신이 만일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새로운 시민권을 얻어 그 나라의 시민이 되면
그 나라의 법과 국가관에 복종해야 한다.
이처럼 구원은 내가 영원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을 믿는 과정이 아닌
그분의 은혜로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과정이고 하나님 백성이 징표가 구원이라는 사실이다.

간단하게 성경에서 이러한 인간의 구원관과 하나님의 구원관의 다른 사례를 설명하고 이 나눔을 끝맺겠다.

처음 사례는 창세기에 동산에서 남자와 여자가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사건이다.
동산이란 하나님의 권세가 임하는 하나님의 왕국이다.
그렇기에 성경은 그곳에서는 하나님과 피조물이 동행하였다고 기록을 하였다.
뱀의 유혹은 피조물이 하나님과 같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여
선악을 아는 열매를 먹어도 죽지 않는다고 속였다.
이 말씀은 인간이 스스로 노력하여 구원에 이룰 수 있다는 사탄의 유혹을 경고한 말씀이다.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 왕국에서 그의 말씀을 불순종함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쫓겨나가게 되었다.

또 하나의 사례는 복음서에 나온 부자 청년과 예수와 대화에서 구원의 교훈을 배울 수가 있다.
부자 청년은 예수의 능력과 말씀을 보고 들었기에
예수를 선한 선생님이라 칭하면 예수에 관하여 존경의 자세를 가지고 접근하였다.
그리고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느냐고 질문했다.
부자 청년은 자신이 행한 율법 준수의 사례를 나열하였다.
마치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증거를 보이기 위하여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과 별 차이가 없다.

예수는 그 청년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그에게 있는 모든 재산을 나눠 가난한 자에게 주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많은 경우 이 말씀에서 모든 재산을 이웃에게 다 나누어야
온전한 구원을 받는다고 예수께서 교훈하셨다고 배웠다.
즉 사랑으로 나의 모든 소유를 나눠야 영생을 얻는다고 예수님의 교훈을 해석하였다.
이 말씀은 교훈은 나의 모든 소유를 이웃에게 나눠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라는 말씀이 아니다.

예수는 이 청년에게 구원을 위한 율법의 한계를 지적하기 위하여 이런 말씀을 하셨다.
부자 청년은 예수께 “내가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마가복음 10:17) 라고 첫 질문을 던졌다.
마치 현재 우리가 천국에 가기 위하여 구원을 간절히 구하는 모습과 별 차이가 없다.
내가 어떤 종교적 행위나 자세 등으로 “나의 노력”으로 구원의 정당성을 얻기 위한 자세와 같은 모습이다.

동산에서 여자가 선악을 아는 열매를 취하는 “나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는 모습과 유사하다.
예수는 부자 청년에게 그에게 가장 약한 모습을 보시고 그 소유를 나누도록 명하셨다.
이는 어느 피조물도 스스로 무엇을 해도 구원을 절대 얻을 수가 없다는 한계를 알려 주신 사례이다.

이러한 부자 청년의 모습을 보고 제자들은 예수께 이렇게 물었다.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가 있겠는가?“(마가복음 10:26) 질문을 하였고
예수는 그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셨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가복음 10:27)
구원은 이처럼 주의 은혜로 그의 백성이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럼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신앙의 자세는 어떤 모습인가?

부자 청년 이야기 뒤편에 바로 여리고에서 예수를 맞이하는 맹인 거지 바디매오의 자세에서 배울 수가 있다.
그는 부자 청년과 달리 가난한 거지이고 심지어 구약 레위기에서 흠이 있는 자로 명한 맹인이었다.
(“누구든지 흠이 있는 자는 가까이하지 못할지니 곧 맹인이나“(레위기 21:18)
그는 율법에 따르면 부정하고 사람의 평판으로는 무시당하는 가난한 자였다.

예수가 자신의 동네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많은 군중을 뚫고 예수께 다가가 소리쳐 외쳤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마가복음 10:47)
그는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왕국으로 인도할 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다윗의 자손 예수“라 호칭하면서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청을 하였다.
이러한 그의 애타는 간절함에도 그는 주변인들에게 힐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바디매오에게 조용히 할 것을 요구했다.

부정하고 가난한 자가 어떻게 감히 예수께 요구할 수가 있냐고 무시하였다.
그는 그러한 주변의 질타에도 불구하고 더욱 큰 목소리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외쳤다.
예수는 그를 불러 “안심하라” 위로하시고 그의 눈을 뜨게 하셨다.
마가복음은 그가 눈을 뜨고 예수를 길에서 따르게 되었다고 기록을 하였다.

내가 천국에 가기 위하여 구원을 받으려는 나의 자세에서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 왕국 백성의 영광을 소망하는 자세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왕국의 백성이 되면 말씀과 주의 뜻에 내가 순종하는 삶을 사는 증거가 열매로 나올 것이며
그때 우리는 구원이 나에게 임하였다는 사실을 삶에서 알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