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ructionTemple_Jerusalem

그림은 70년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의 모습입니다.

“영적 분별”과 “판단하지 말라”란 말씀의 성서적 의미

완전한 신자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남을 함부로 판단하면 안된다고 생각 합니다.
예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은사 계열의 인도자에게 특히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

이 판단의 성경적 해석은 영의 분별을 무시하라는 의미는 전혀 아닙니다.

성경에서

요한1서
사랑하는 자들아 영들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로마서 12장 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말씀은 대표적인 분별에 대한 성경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고린도 전서 4장5절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로마서 2장 1-3절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마태복음 7장 1-3절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이 말씀은 비판이나 판단에 대해 경고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많은 영적 사역자나 목회자께서 이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 경고하십니다.

성경에서는 어느 말씀에서는 분별하라고 하시면서 또한 어느 말씀에서는 판단하지 말라 하십니다.

그 의미의 차이는 여기에 있습니다.

판단, 정죄를 나타내는 (뒷 부분에 제가 인용한 성경 말씀) 이 단어는 성경 사본에는 크리노 혹은 카타크리노(판단하다,정죄하다,심판하다)라는 그리이스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언어는 주로 예수님이나 바울 당시에 로마 제국에서 법정 용어로 사용된 단어 입니다.
이는 말 그대로 피고를 무죄다 유죄다 선언하는 단어 입니다.
예수님께서 바울이 사용한 이 의미는

정죄는 심판날에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 인간이 하나님의 그 권리를 행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지체의 윤리적 잘못을 보고 ” 저 사람 죄인이야!! 천국은 못갈 것 같아!!”
혹은 ” 저 사람은 아무리 예수를 믿어도 저 모습이니 구원 받기는 틀렸어..”
또는” 목사님이(혹은 성도가) 이런 죄(윤리적인 죄)를 행하셨으니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윤리적 판단으로 인한 구원의 문제나 천국에 갈수 있네 없네 문제는 인간에게 그 판단의 권리가 없습니다.
인간이 함부로 지체에게 이런 잣대로 판단하면 이는 분명 하나님의 권한에
정죄받는 인간이 다른 지체를 정죄하는 큰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바리세인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의롭다는 교만에서 타인을 정죄하였습니다.
우리가 의롭다는 것은
윤리적인 행위가 아닌 오직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과 부활의 영광에서
의롭다는 칭의를 받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외에는 아무도 정죄할 수 없습니다

주변에 지체중 이런 잘못이 있으면 중보기도하고 (오직 기도로 이 문제를 아뢸 수 밖에 없고) 더 악한 모습이 심하면 성경의 말씀으로 치리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 치리된 지체의 구원에 대한 문제에는 우리가 판단하면 안됩니다.

앞 부분의 분별은 모두 도키마조란 그리이스어를 사용합니다.
이 단어의 원래 의미는 “조사하여 그것이 거짓인지 진짜인지 구별한다
란 의미입니다.

즉 열매를 상세히 조사(관찰)하여 그것이 거짓인지 진짜인지 잘 구별하라는 의미입니다. 예수께서 인용하신 열매에 대한 표현은 분별과 연관이 있는 표현입니다.

이 분별의 단어인 도키마조는 히브리어 “빠한“과 같은 의미의 단어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사용된 헬라어 구약 성경인 70인역에서 구약의 말라기의 십일조에 대한 언급의 말씀인 “복을 주시는지 아니 주시는지를 시험해보라“에서 시험(분별)이란 단어로 이 도키마조를 사용했습니다.

빠한“의 의미인 “도키마조“을 영적 분별로 성경은 표현했습니다.

(참고로 “너희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에서 사용된 시험은 빠한이란 히브리어가 아닌 “나싸“란 히브리어 입니다. 이 의미는 일반적인 “시험하다(test)“란 의미입니다.
학자들은 구약의 히브리어와 신약의 헬라어의 대응관계를 주로 예수님 시대의 그리이스어로 번역된 구약의 말씀(개신교에서 제외한 구약의 외경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로 헬라파 유대인이나 바울이 사용한 구약은 이 70인역이라 학자들은 말함니다)70인역과 교부들의 구약 주석서에서 인용된 말씀을 연구하여 헬라어의 히브리어의 대응에 대한 정확한 의미의 해석을 제공합니다.)

고린도 후서 13장 5절의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란 말씀에서
시험은 헬라어 페이라조로 히브리어 나싸와 대응되는 말입니다.
이 말씀에서 바울은 “시험하고 확증하라” 더 포괄적으로 “열매“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예수님 당시의 랍비 문서나 묵시 문학에서 열매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열매의 해석”은 “악한 영과 성령의 구별” 혹은 하나님의 일의 구별로 많이 언급됩니다.
(구전 토라인 미쉬나나 토세프타나, 사해 문서나 당시의 외경을 읽어보면 이런 표현이 많이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7장 15-17절에서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에서 거짓 영적 지도자의 분별을 열매의 구별로 표현하셨습니다.

이 열매(이는 영적 능력이 아닙니다.)의 종류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많은 영적 사역자들이
영적 능력으로 놀라움을 제공합니다.
이 놀라움은 단순한 테라스(헬라어로 신기한 현상을 볼때 느끼는 놀라움)로
느끼며 “주의 임재”라 “주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신약 성경은 헬라어의 기적을 나타내는 여러 단어로, 세레미온, 테라스, 두나미스로 각 의미를 다르게 나타내고 있지만 현재 영어 성경이나 한글 성경에서 이런 단어 의미의 정확한 구분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예수님, 바울이나 교부들..진정한 영적 선배들은 여기에 경고 합니다.
악한 세력은 오순절 후 유사한 능력을 보이며 많은 지체들을 오도하여 사망의 자리로 인도했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초대 교부들이 갈수록 영적 분별에 언급을 하였습니다.

그 영적 지도자에게 참다운 성령의 열매가 없으면 예수님은 거짓 예언자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예수님은 그렇기에 그 거짓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여도 심판날에 그들을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지체를 정죄를 하면 안되지만
영적 분별은 꼭 해야 합니다.

많은 주의 사도..혹은 영적 지도자..하나님이 쓰시는 종…
자칭, 타칭 말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분별하십시오..

거짓 영적 지도자들은
지체를 이용하여 자신의 영광과
주님의 제물에 손을 대어
자기의 소유물로 취급하면서
“주의 일”이라고 소리지르며
지체들의 눈을 감기고
귀를 막고 입을 봉합니다.
그리고
감히 주의 사자의 일에 성령 훼방한다” 하면서
아전 인수격으로 말씀을 해석하며
지체들에게 겁을 줍니다.

그들은 주에게 갈 영광을 자신들이 누리고
주의 나라에 사용될 주의 예물을
자신들의 배를 위해 사용합니다
그리고 면죄부를 팔면서
구원에 이루었다고 사면합니다.

그 사망의 유혹에는
욕심이 있는 지체들이 빠져 갑니다.
명예의 욕심…물질의 욕심…은사의 욕심…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악한 자의 지배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의 죄의 뿌리가 이렇게 깊기에 통곡하며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바울이 말한 성령의 열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대한
진정한 열망과 그들의 삶에서 거룩이 있는지
점검하십시오…

초기 기독교시절에 많은
지체들이 이런 미혹의 이단에 의해 사망의 실로 갔습니다.
기독교 역사는 생생하게 이런 사건을 증명합니다.

다시 생각하면…
성경에서 판단하지 말라(크리노)는 일반적으로 윤리적 판단에 사용되고
분별하라 (도키마조)영의 사역에 사용됨을 잊지 마십시오.

성경 말씀은 확연하게 판단과 분별이란 단어를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말씀하시지만 종교 권력에 욕심이 있는 자들이 이런 엉뚱한 해석으로 위협하면서 많은 지체를 오도합니다. 주의하십시오…

어느 분이 이런 말씀을 나누면 당신은 영적 능력을 체험했냐고 부정적인 자세로 질문 합니다.

바울의 말처럼 영의 사람은 그 영을 구별합니다….

거짓인지 참인지…

지금은 거짓이 많은 시대입니다.
미혹의 영이 주의 지체를 미혹하는 시대입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영의 역사에 잘못된 해석의 빌미를 준 사람들은
영적 구별을 못한 영적 지도자들의 잘못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성령의 다양한 모양의 역사와 거짓은 다름니다.
거짓을 가지고 성령의 다양한 역사라고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같은 뿌리가 아니기에 열매가 확연하게 다릅니다.
아무리 성령, 계시, 하나님, 예수님, 능력이란 말을 하여도..
악한 영은 점점 다양하고 매우 교묘한 방법으로 자신을 숨기고 인간의
욕심을 이용하여 접근합니다.

에덴에서 악한자는 이런 모습으로 이브를 유혹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접근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의 시험에서 사탄은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이브는 주의 말씀의 불순종으로 사탄의 유혹에 빠졌지만
우리 주님은 말씀과 순종으로 이기셨습니다.

아무리 놀라운 능력이 보인다 할지라도
그 안에 예수의 구원의 생명과
나의 주라는 성령께서 알려 주신 고백을 하지 아니하면..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이 왜 그렇게 중요하고
죄에 대한 통곡의 회개가 왜 그리 중요한지
부활이 왜 우리의 기쁨인지…
이런 말씀이 없으면….거짓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지금 3시에 언급되는 외국의 영적 지도자들…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선지자 학교, 영적 은사 훈련 센터…
구약의 엘리사의 제자들을 보고 그렇게
이름을 붙인 단체가 많습니다
몰몬교 교주 죠셉스미스가 이런 선지자 학교를 만들어
자신들의 후예들을 훈련시켰습니다.

성경에서는 주께서
그 분의 의지로 그의 사람을 선택하여
그 분의 때에 그 분의 방식으로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그 훈련은
광야 생활이고 나그네의 삶이었습니다.
광야 생활의 도구는 은혜안에서 주의 말씀입니다.

조심스럽게 분별해야 합니다.
3시의 귀한 지체들이 올바른 분별로 주님의 더욱 주의 나라와 뜻에
바르게 사용되는 용사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제 주변에도 영적 어르신들이 계셔서 영적 경고와 훈계를 주십니다.
가방끈..인간이 만든 어리석은 잣대입니다.
제가 경험한 성령님은 반 지성적이지 않으셨고
초월적이신 분이었습니다.

제가 여기에서 저의 부족함을 떠 벌이는 것이 아니라
악한 영이 이런 인간의 지식을 가지고 공격을 하기에
부족한 돌이지만  소리를 질러 보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하나님의 사람은  그 자가 거짓인지 진짜인지 압니다.

좀 과격한 표현이지만 (그렇지만 사실입니다..)
극단적인 영의 검증중 하나는
강신무당이나 귀신 들린 자를 만나면 압니다.
그들이 더 잘 압니다.
마가복음에서도 아무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몰랐는데
회당에서 귀신들린 자가 알았습니다.
실제 경험에서도 아무리 영에 대한 말..신학에 대한 말을 할지라도
그들앞에 가면 그들이 정체를 압니다.
예를 들면
“네 눈이 무서워..보지마..”소리를 지르는 경우..
” 네 신이 나의 신을 방해하고 있어..예수신이 방해하고 있어..”

그리고 악한 영에 사로 잡힌 자(소위 귀신 들린 자)의 축사의 경우
귀신같이 (표현이 우습지만..진짜..귀신같이..)하나님의 사람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알고 포악하거나 심한 욕을 하거나 심지어 발작 증세를 보이기도 합니다.
떠들지 않고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자랑하지 아니해도
악한 영은 매우 잘 압니다.

그렇지만 이런 깊은 영적 분별력이 없는 지체들도 많이 있고
영적 전쟁이란 단어가 단지 성경에서 표현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악한 영은 주의 자녀가 아닌 자에게 영의 공격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지배에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 전쟁의 형태는 다양합니다.

그렇기에
제 자신도 항상 떨림과 두려움으로 주의 길을 따르고자 합니다.
기도 부탁드립니다.


아래 댓글은 나눔의 글을 편집한 글입니다.

지체1: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가입한 어느 교회의 커뮤니티에서는 자주 단체메일이 오는데, 자신들의 교회가 오해받는 것에 대해 성경적으로 변론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처음으로 그 담임목회자에게 답장을 썼습니다.(물론 저도 좋은 마음은 아니었습니다).
딱 두줄: 오해받는 것이 그렇게 두려우냐고.. 때론 침묵이 아름다워보인다고..
너무도 빨리 답장이 왔더군요.
딱 한 줄: “당신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조금 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가나거나 하는 건 전혀 없었지만, 어쩜 이렇게 확신에 찬 말을 쉽게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말을 하는 분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정말 가진건지…
요즘은 그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소위 믿음좋다는 분들 중에,
진리를 아는 것이 마치 “권력”을 지닌 것처럼 그걸 깨닫고 누리지 못하는 자들에게 칼날을 휘두르는 모습이 참 많다는 생각..
바닥을 치는 영적 상태(근원적 의심, 회의, 거부감) 속에서,
아래 “제 3시의 귀한 지체들에게”라는 작은자님의 글을 읽고
조금이나마 위로를 얻었습니다.
메일을 보내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메일을 쓰기엔 너무 복잡한 마음이라 관두었습니다.
지금까지 만나왔던(예전의 저처럼)
늘 “정답”만을 말하려 하는 크리스찬들에게,
지쳤다고나 할까요?
가끔은 우는 자와 함께 울어주는 사랑이 그립습니다.

작은자:

가끔은 우는 자와 함께 울어주는 사랑이 그립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얼마전 어느 지체께서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힘드시면 저에게 말씀하세요.”
이것이 사랑입니다.
우리 인간은 무너지기 쉬운 자들입니다.
주변의 지체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 공동체가 어려움에 있는 한 지체를 진정 돕기 전까지는 하나님은
역사 안 하십니다.”

저도 어제 하나님께 짜증을 냈습니다.

“당신께서 만드신 피조물입니다
이 약한 것 다 아시니…”
하면서 막 짜증을 냈습니다.

전 실제적 사랑없는 기독교는 껍질만 있는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입으로 사랑한다면서 배고픈 자에게 자기 가진 것을 나누지 아니하면
그것은 거짓 사랑이라고 성경은 말씀 하셨습니다.

오순절 성령의 강림 후 단지 이적의 현상만 생긴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가 서로 자기 소유를 나누어 필요한 지체를 도왔습니다.
바나바는 이런 나눔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과 야고보가 만났을 때 그들의 유산을 지킬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 유산은 도움이 필요한 자를 돕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열매인 것이죠..
(그런데 왜 이것보다 다른것들이 더 강조되어야 하는지…)

저 개인적으로 진보적 신학의 입장에 있었기에 사회 정의나 분배에
많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에는 인간의 인식의 신념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거기에는 진정한 사랑이 없고 자기 희생이 없습니다.
단지 정의라는 명목하에 자기 의가 숨어 있던 것이었습니다.

성령께서는 내가 죽어야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느 정도 저의 의지가 용납하는 선까지 희생을 하고 받아 들이지만
그 이상이 되면 짜증이 나고..
이런 모습은 단지 주지주의자의 모습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울고 주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내리 사랑을 받지 못하면 사랑을 줄 수가 없습니다.
시편의 기자의 기도처럼 주의 은혜를 구합니다..

그것이 성령의 온전한 열매..
이 온전한 사랑은 성령 충만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귀한 열매임을 배우고 있습니다.
내가 할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의 나의 결단은 내일 손 쉽게 무너집니다.
기독교는 의지의 종교가 아닙니다..사랑의 종교 입니다..
위로 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사랑..
내가 할수 있는 것은 순종입니다.
그러면 그분은 방식으로 우리를 강하게 만드시고
그 분의 온전한 사랑의 사람을 만드신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힘들고 약하지만 지체1님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메일 보내셔도 좋습니다.
힘내십시오.

이 약함마저 아시고 우리를 기억하십니다.

작은자:

네, 주님을 보는 일이 우리의 최고의 일입니다.
제 주변에도 연세가 80, 90 이상의 어른들이 계십니다.
놀라운 경험을 하신 분들이지만 지금은 그 놀라움을 다 내려 놓고
오직 말씀에 충실하시며 교회를 어린 지체를 돕고 기도의 용사들이시죠.
이렇게 영적 능력을 가지신 분들이 모이시니
어느 때는 서로 자신의 능력에 대해 보이지 않는 우월 의식을
표현하십니다.
말씀 연구 중 능력에 대한 말이 나오면 은사의 능력에 대해 한 마디 씩..
현재에도 놀라운 능력을 가지 신 분들입니다.
주위에 사람들이 오셔서 부탁을 그 분들 께 하지요..
그런데 그런 분중 어느 어르 신은 말씀이 없으십니다.
오직 말씀과 눈물의 중보기도..
그분은 이 지역에서 많은 분들이 그 분께 기도 부탁 그리는 분입니다.
젊으실 때 이성봉 목사님께서
“자매님은 주의 일을 하실 분입니다”라고 영적 권고를 받고 놀라운 능력을 행하신 분입니다.
지금도 그 연세에 중보기도를 하시고 그 기도가 놀랍게 역사하므로 많은 사람들이 그 전도사님께 기도부탁드리는 분입니다.

그 분은 그런 놀라운 능력과 체험을 했지만 말씀이 없으십니다.
다른 어르신들도 신기한 능력을 지금도 행하시지만
보이지 않는 질투가 있는 것은 사실이더군요..
하나님이 날 사용하신다…

제 영은 그 이성봉 목사님의 애제자분께 기뻐하더군요.
한 지체가
“자기의 죄가 얼마나 악한지..그 것을 아는 자가 큰자입니다..”
모두 조용하시더군요…

이젠 요한 1서 2장의 영적 성장의 단계의 말씀처럼
이젠 이런 능력의 간구를 초월하는 신앙하는 성장이
이뤄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주의 복음의 진리안에 서 있으면
이 모든 것은 그냥 선물일 뿐입니다…..

그렇겠죠..
신기한 능력을 보면 영의 역사…
이스라엘 백성도 광야에서 맛나와 메추라기..반석에서 물…
그 신기한 순간에만 감탄하고..본질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그 많은 사람들도
오병이어의 기적과 병고침..
그러나 그 기적끝에 그들은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자기 만족이죠….

그런 것.. 이상의 것…
생명이죠 사랑의 생명…그것이 부활을 가져오고
타인을 살립니다
오직 주의 복음이 우리의 입술에서 고백되고

이제는 환경에 연연하지 않는 그 고백이 나올 때
바울의 이 고백…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빌립보서 4:12-13

이 능력은 어떤 기적이 아닌 그 이상의 것..
환경을 초월하는 믿음입니다..궁하나..부하나..이 환경을 초월하는 믿음..
이것이 주가 주신 능력….

사랑할 수 없는 자를 사랑하고
자기 애에 빠져 이기적인 우리가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악한 환경에서고 주님께 감사하는..
진정 영과 진리로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두려워 하고 사랑하는 자…

이는 능치 못할 것이 없는 자입니다.
세상이 두려워 하는 자입니다.
악한 영이 두려워하는 주의 용사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쓰시는 자입니다….3시의 지체들에게 주의 크신 영광이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