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에 관하여 여러 번 설명하였다.
어원적으로 신, 구약에서 어원적, 신학적, 역사적 배경을 분석하여 기도에 관한 설명 등 여러 설명을 나눈 경험이 있다.
간략하게 기도는 구약에서는 어원적으로 기도, 명상, 청원, 중보, 통곡하다, 한탄하다 등의
여러 뜻을 가진 히브리어로 표현되었고, 신학적으로는 구속자, 창조자로 하나님을 찾은 자를 신이 직접
그에게 오셔서 언약의 관계를 맺으시고 기도를 도구로 교제와 가르침, 계시를 주셨다.

신약에서도 어원적으로 신에게 간청, 기도, 중보, 맹세 등 구약과 같이 여러 뜻을 가진 헬라어로 표현되었고
신학적으로는 구약과 좀 다르게 아버지, 아들, 성령과 기도를 연관을 지어 관계의 의미로 기도를 표현하였다.
물론 구약에서도 창조주, 구속자의 하나님과 관계를 언급하면서 기도를 언급하였지만,
신약에서는 좀 더 개인적 관계로 기도가 설명되었다.

구약의 기도자는 믿음의 조상과 구속사의 인도자인 제사장, 모세나 여호수아, 선지자가 주로 언급되었고
구속사 과정에 나타난 몇몇 개인의 기도도 언급되었다.
신약의 기도자는 구약의 신앙의 대표자가 대부분 기도자로 표현된 것과 달리 일반인이 기도자로 표현되었다.

이는 신학적으로 성전 중심의 영적 대표자에서 성령이 함께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성전이 되어
구약의 영적 대표자 자격으로 기도를 하게 되었다.
단적으로 이런 관계를 잘 설명한 말씀은 베드로 전서 2:9이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 시대에 종파별로 대표적인 기도문이 있었다.
유대인은 18 기도문, 쿰란 종파의 기도문 등 각 종파의 기도문이 있었다.
성경에서는 세례 요한을 따르는 무리도 기도문이 있었다(누가복음 11:1).
사실 제자들이 예수에게 세례 요한을 따르는 종파가 자신들의 기도문이 있다는 사실에서
예수에게 자신들의 대표적인 기도문을 알려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들의 요청에 예수께서 알려주신 기도문이 주기도문이다.
예수의 주기도문과 당시의 다른 종파의 기도문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형식은 아주 유사하다.
구체적인 내용은 전에 기도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눌 때 주기도문과 18 기도문의 차이점을 설명을
자세히 하였기에 여기에서는 더 이상의 언급은 생략하겠다.
단지 간략하게 서술하면, 예수의 주기도문은 유대교의 정통 기도문인 18 기도문과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다.
차이점은 종말론적 관점에서 악과의 대결을 언급한 부분이다.
이러한 영적 싸움의 구절은 쿰란 종파의 기도문에도 나타난다.
당시에 종말론적 종파는 이러한 영적 전쟁을 유대 18 기도문과 달리 그들의 기도문에 표현하였다.
예수는 공관복음에서 언급된 귀신들인 소년의 치유에서 나타난 제자들의 무기력한 모습을 가지고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다“라고 선포하시면서
종말론적 영적 전쟁의 도구로 기도를 표현하셨다.

당시에 유대인은 필연적으로 기도가 삶의 중심이었다.
예수의 제자가 귀신들린 소년을 치유하려고 할 때 그들은 기도를 과연 하지 않았나?
그렇기에 예수는 기도 외에는 악한 영을 쫓을 수가 없다고 했을까?
당시에 랍비 중 축사 전문가가 있었다고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글에서도 설명되고 있고
쿰란 종파에서도 축사의식을 행한다고 기록을 하였다.
물론 그들은 전통적 축사 예식을 따르거나 어떤 도구를 이용하여 축사하였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축사 의식에는 기도가 포함되었다.
사도행전 19:13-17에 에베소에 있는 유대인 제사장의 일곱 아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다가
실패한 사례가 나온다.
여기에서 귀신은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은 모르기에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여도
자신들을 쫓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이 말씀을 비추어 볼 때 예수가 언급한 기도 외 축사 방법이 없다는 말씀은
제자가 기도하지 않았다는 말씀보다 특정한 기도를 언급한 말씀이다.
이는 귀신도 기도자의 영적 권위를 아는 기도를 말한다.
기도자가 영적 권위를 가진 기도란 무엇인가?
이것이 예수가 언급한 기도이다.

예수의 축사는 구약에서 계시가 된 하나님의 종말론 사역의 현장이었고 증거였다.
예수가 그의 죽음을 앞두고 감람산에서 하나님 앞에서 드린 기도는 단순히 죽음을 앞두고
하나님께 
그의 감정을 호소한 기도가 아니었다.
예수는 자신의 사역 마지막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함께 올라간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말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말씀하셨다.

여기에서도 예수는 기도를 시험에서 깨어나오는 도구로 설명하셨다.
귀신을 내쫓고 시험에 들지 않게 하도록 드리는 기도, 예수는 이런 기도를 제자에게 요구하셨다.
요한복음 17장에서는 예수는 제자와 그의 말씀을 따르는 그의 백성을 위하여
구약의 기도자 모습처럼 영적 대표자의 자격으로 축복 기도를 하셨다.
예수가 축사 사역에서 언급한 기도와 감란산에서 기도,
마지막 대제사장의 자격으로 드린 기도는 그의 종말론 사역의 과정에서 드린 기도이다.

축사는 구약의 선지자가 계시한 악한 영과의 영적 전쟁에서 종말론 사역의 완수를 위하여,
감란산에서 그가 드린 기도와 제자에게 시험에서 깨어 있으란 말씀은 종말론 사역의 완성을 이루는 그의 선포였다.
그리고 마지막 제자와 그의 백성을 위한 기도 또한 시작된 종말론 사역이 그의 제자와
그의 백성으로 성취할 수밖에 없다는 종말론 사역 완성을 위한 기도였다.

우리는 기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한다고 하기에, 단순히 자신의 영적 관계 발전을 위하여 기도한다.
그렇기에 기도는 신비적이라고 한다.
기도에는 이런 하나님과의 관계의 신비가 있다.
그렇지만 이런 관계의 신비에만 기도가 놓이면 신비주의자가 되고
어느 경우는 영적 교만이나 분별이 없는 영적 혼합주의에 빠진다.
기독교 역사에서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에 기도의 목적을 두고 기도하다
신비주의자나 끝내 이단으로 빠진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지금도 능력을 강조하는 많은 은사 파나 깊은 명상의 기도로 하나님의 비밀을 안다는
정적주의(靜寂主義)기도가 많이 행하여지고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영적 기도는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인 본질이 아니다.
예수가 우리에게 언급한 기도는 단순히 능력을 얻는 영성 강조의 기도나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는 정적주의 기도가 아니었다.

예수가 그의 사역에서 제자에게 우리에게 언급한 기도란 종말론 사역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 같이 땅에서 이뤄지는 종말론 사역의 과정에서
자신의 영적 정체성을 깨닫고 종말론 사역의 도구로 사용되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 앞에서 대제사장이신 예수의 축복을 힘입어,
사역의 목적을 깨닫고 권세를 받아 사역 완성을 위해 깨어서 온전하게 임무를 완성하는 고백이
바로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기도이다.

이러한 목적이 분명한 기도가 우리의 삶에서 고백으로 나올 때 성령의 인도로
우리는 하늘의 권세를 받아 놀라운 역사를 행하며
마침내 온전하게 주님께 영광을 드리고 우리의 구원의 완성을 이룰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