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phet_Choi

믿음과 정결함.
개인적으로 주님께서 강하게 요구하시는 주제이다.
그분의 역사에서 이 두 주제를 너무 강하게 요구하시고
증거를 보여 주신다.
그렇지만 아직 여린 믿음으로 그분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단지 그분의 은혜만 구한다.

어느 지체님과의 나눔에서
다까시 상, 최춘선 선지자, 대천덕 신부님에 관한 단상을 들으며
다시 한번 최춘선 선지자의 삶을 생각해 본다.

거짓과 진리가 혼재된 현재의 우리의 믿음의 터에서
주님을 따르는 한 진실된 선지자의 삶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분명히 보이고 계신다고 생각한다.

그의 소리는 심판을 알리는 노아의 소리였다.
또한 선지자의 소리였다.
(노아 또한 선지자였다.)
영의 귀가 있는 사람은 그의 소리를 분명 들어야 한다.

한국에 이런 선지자를 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아래 글은 한 신학자가 본 최춘선 선지자의 모습이다.


광복군 최춘선 목사님
노  영  상(기독교윤리연구소장, 장신대 신학과 교수)
학교에 앉아있었다. 전화가 왔었다. 모 방송 K피디의 전화였다. K피디는 대뜸 최춘선 할아버지를 아느냐고 물었다. 최춘선 목사님을 말하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그를 알았던 사람들은 모두 그를 최 목사님이라고 불렀었다. 논픽션 영화를 찍었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고 있음을 말하였다. 그는 최춘선 할아버지에 관한 여러 질문을 하였다. 최 목사님 댁에서 최 목사님을 잘 아는 사람으로 나를 소개하였던 것 같다.

K피디의 전화가 있은 후 며칠이 지나, 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모출판사의 J사장으로부터의 전화였다. 최춘선 목사님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책을 편찬하자는 제안이었다. J사장을 찾아가 그 일에 대해 의논하였다. 책이 곧 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책의 편찬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최 목사님 측근의 사람들과 전화통화를 하였다. 최 목사님께서 돌아가신지 3년을 넘겨 이미 많은 자료들이 유실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영화를 통해 그의 삶의 한 궤적이 소개되었으나, 그와 같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그의 뜻이 아닐 것 같다는 의견들도 있었다. 며칠 간 그의 삶에 대해 정리해보다가, 책을 내는 일을 접는 것이 순리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메이지 대학에서 공부, 가가와 도요히코와 우치무라 간조로부터 영향을 받음, 일본 유학 시 군사훈련을 거부하다 어려움을 당하게 되어 만주로 가서 광복군으로 활동, 광복군 섭외부장, 그리스도교회에서 목사로 안수 받음, 목회를 접고 문서 선교와 노방 전도에만 전념하기 시작, 맨발의 전도자로 2001년 지하철에서 전도를 하다 앉은 채로 하늘의 부르심을 받음, 대전 현충원의 제2애국지사 묘역에 묻히심.

2001년 그의 영면에 대한 소식을 듣고, 달려가 그의 가족들로부터 그의 마지막 며칠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행방불명이 되어 여러 날이 지난 후, 그의 시신을 찾을 수가 있었다고 하였다. 목사님다운 마지막이셨다. 물론 그도 연약한 인간이며, 여러 가지 어려움을 가졌던 사람이었음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고아와 노숙자들과 같이 하였던 그의 실천적 집념과, 앉으면 성경 이외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오직 예배를 드리는 일만에 몰두하였던 그의 신앙적 열정을 마음에서 지울 수 없다. 그는 어린 아이들에게도 언제나 존댓말을 하곤 하셨다. 추운 겨울 맨발로 전도하며, 항시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였던, 목사님의 삶은 평범한 사람들이 좇기 힘든 것으로서 누구에게나 거리끼는 일인 것이다. 아직도 아침 일찍 저의 집을 찾아와 함께 예배드리시면서, 국가와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진지하셨던 그 분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예전 편지들을 뒤적거리다, 그로부터 받은 편지들이 있어 살피는 중, 눈에 들어오는 구절을 적어보았다: “보혈, 성신, 생명, 평화, 사명, 강건, 평등, 풍요, 자유 의식

[의] 회복/ 범죄, 정죄, 사망, 질병, 빈곤, 압제, 노예, 저주 의식[의] 소멸.”

그렇게 자랑스러운 경력을 갖고도, 그와 같이 겸손하게 살았던 목사님의 진정한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대선문제로 매스컴이 떠들썩한 요즈음, 조국의 독립과 어려운 사람들의 안위를 위해 헌신하셨던 복음적 평화주의자이며, 맨발의 전도인이었던 광복군 최춘선이란 이름이 오늘의 우리들을 다시 불러 세우는 것 같다.


아래 글은 최춘선 선지자의 아들은 최바울 목사의 아버님에 대한 회상의 글입니다.

부끄러웠던 맨발의 아버지가 이제는 제 인생의 모델입니다

지하철 3호선. 푹푹찌는 무더위를 뚫고 한 노인이 다가왔다. 그는 맨발이었다. 굳어지고 갈라진
맨발로 그는 지하철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계절이 바뀌고 한파가 몰아친 어느 겨울날, 그 노인은 여전히 맨발이었다. 알아 들을 수 없는 단어들을 외치며 죽는 날까지 거리를 배회했던 맨발의 가엾은 노인을 바라볼 때마다 ‘과연 저 이의 자식은 누구인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훗날 그가 죽고서야 한 다큐감독에 의해 그가 목사이자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고 최춘선목사’. 그가 죽은지 7년 남짓. 남아 있는 그의 가족이 궁금했다. 자녀들에게 최춘선목사는 어떤 아버지였을까. 지금 그들에겐 무심히 거리를 벗삼은 아버지의 기억이 어떻게 남아 있을까 알고 싶었다. 호기심으로 만나본 최춘선 목사의 장남 최바울목사는 아직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시울을 붉혔다. 갈라져 피가 나오는 발에 깊이 박힌 유리 조각을 빼내며 “이제 그만 나가시라” 애원했지만 아버지의 열정을 말릴 수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그 아들은 ‘아버지의 맨발’을 닮고 싶어한다.

아버지 죄송해요. 얼굴은 아버지 모습을 그대로 닮았는데 발은 닮기 힘들 것 같아요.”

2004년 ‘맨발 할아버지’로 수많은 기독교인들의 눈시울을 적셨던 고 최춘선 할아버지의 장남 최바울 목사(동그라미 유아심리연구소)가 전하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의 고백이다.

맨발의 전도자로 살다가 2001년 주님 곁으로 떠난 맨발 할아버지. 3년 뒤 어느 다큐멘터리 감독의 카메라에 담겨있던 영상이 전파되며 세상을 감동시킨지도 어느 덧 4년이 지났다. 거렁뱅이 예수쟁이에서 맨발의 천사로 세상을 감동시킨 할아버지의 사역은 아직도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이 시대 참 그리스도인의 모범이 되어주고 있다.

천국에서도 전도하시는 아버지

돌아가신지 7년이 지난 지금도 인터넷과 DVD, 책 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는 할아버지. 지난 21일 찾아간 한남동의 동그라미 유아심리연구소에서 최춘선 할아버지가 아버지임을 첫눈에 알아볼 수 있는 그를 만났다.

사무실로 들어서자 “어서오세요. 이쪽으로 앉으세요.”라는 음성과 모습은 “어디서 봤더라?”라는 의문을 잠시 일으켰다. 맨발 할아버지의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한 최바울목사.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해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유아심리를 연구하며 유아교육 전문프로그램과 사역자를 양성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었다.

돌아가신 후 아버지의 자리가 더 커져있었기에 ‘맨발 할아버지’에 대한 물음에 기억을 더듬는 최목사의 눈시울은 촉촉해졌다.

신앙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보여주는 것이라는 걸 죽기까지 몸소 실천하셨던 분이에요.”

목이 매였는지 말을 잠시 아낀 그는 생전에 육신의 고통까지도 견뎌가며 전도에 힘썼던 아버지의 모습을 전했다.

기력이 다하신 아버지께서 한번은 식사 중에 ‘아가 숟가락 좀 가벼운거 없니?’라고 하시는 거에요. ‘얼마나 기력이 떨어지셨으면 숟가락이 무겁다고 하실까’하고 맘이 아팠지만 아버지의 전도는 막을 수가 없었어요.”

말씀을 전하고 사랑을 전하는데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저 전해야만 했던 맨발 할아버지. 십자가에 빚진 자 된 그의 마음속에는 부인과 자식은 물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사명감과 열정이 자리 잡아 강직한 전도자의 삶을 그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조금의 의심없는 믿음의 소유자

아버지는 내일 일은 절대로 걱정하지 않는 분이셨어요. 당장 내일 먹을 쌀이 없어도 전부 나눠주시고, 새 옷을 사다드리면 밖에 나갔다 들어오실 때 다 떨어진 헌옷으로 바꿔 입고 들어오시고, 심지어는 ‘바울아 너는 따뜻한 옷이 또 있지?’라고 하시며 제 잠바들도 모두 나눠주셨으니까요.”

당시 고생을 많이 했지만 부족했던 부분들은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항상 채워주셨음을 전했다.

한번은 다음날 아침에 먹을 쌀을 전부 나눠줘 어머니께서 발을 동동 구르시고 계신데 지방에서 한 성도가 첫 수확한 쌀이라며 새벽차로 올라와 문을 두드린 적도 있었어요.”어린 마음에 자신의 옷이 하나 둘 없어질 때 마다 속상했었다고 전하는 최목사.

중학교 때는 동생들을 모아놓고 ‘아버지가 예수를 믿어서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이니 우린 절대로 예수 믿지 말자’라고 했던 때도 있었어요. 김포 일대의 땅이 대부분 아버지 소유였고 자동차가 다섯 대나 있었는데 모두 나눠주고 개천 다리 밑에서 살다가 쫓겨나는 일이 비일비재해서 어린 마음에 상처가 컸었던 것 같아요.”

독립운동을 하셨던 아버지가 도장하나만 찍으면 증손자까지 4대가 학비 지원을 받으며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던 터라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서류를 위조해가며 받아내려는 독립유공자 자격을 ‘나라가 반쪽인데 그 돈을 받을 수 없다’며 끝까지 도장을 찍지 않으셨어요. 목숨을 걸고 지키셨기에 대한민국을 지독히도 사랑하셨죠.”

동생들을 모아놓고 ‘예수 믿지 말자’던 사춘기 시절의 상처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모두 채워주시고 회복시켜주시고 인도해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위탁하신 가족의 삶

‘예수 믿지 말자’던 다짐이 ‘오직 예수, 오직 기도’로 바뀌어 버린 사건도 있었다. 모든 재산을 다 나눠주고 쫓기다가 생계를 위해 어머니와 미술학원을 열기로 했을 때였다.

“미술 학원 첫 입학식 때였는데 사회를 맡았던 저에게 기도를 하라고 하시는 거에요. 교회도 아니고 기독교학원도 아니라 망설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바울아! 너는 그거도 못하니?’라는 불편한 마음을 심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큰소리로 ‘하나님께 기도드림으로 제1회 동그라미 미술학원 입학식을 시작하겠습니다’라고 외치고 기도를 드렸죠. 아니나 다를까 4명이 바로 그 자리를 떠나버렸어요. 그런데 다음날 하나님께서 8명으로 채워주셨어요.”

그 이후로 항상 기도를 하며 월요일마다 예배를 드리는 미술 학원이 됐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 중에 하나님을 빼고는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어요”라는 그의 고백은 모두 기적이고 이적 뿐이라 동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를 입학하는 딸을 키우며 아버지의 자리에 있는 그에게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 “저도 아버지가 되어보니 아버지께서 많이 외로우셨을 것 같아요. 늘 죄송한 마음뿐이에요. 제가 친구 같은 아들이 되어드렸어야 했는데…”

가정에서 성경이외에는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던 아버지를 너무 높이만 바라봤던 후회스러움이 최목사에게 밀려왔다. “아버지께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셨던 거에요. 자신보다 더 잘 키울 수 있는 하나님께 자식들의 교육을 위탁하셨던 거죠.”

복 받은 무소유와 희생의 삶

자녀들은 하나님께 위탁하고 나라를 위해서 또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몸 바쳐 싸움을 하던 최춘선 할아버지. 버스기사에게 떠밀려 골반 뼈가 부서져 처음으로 자식들에게 고통의 눈물을 보이면서도 전도를 멈추지 않았고, 두꺼운 발바닥에 유리조각이 박혀 피가 흘러도, 예수쟁이라는 어떠한 핍박도 할아버지에게는 아무런 염려가 되지 못했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했었는데 마지막 손을 흔드시는 모습이 아버지의 임종의 모습이었어요.”

친구의 연락을 받고 인터넷에 올라온 아버지의 동영상을 보고 밤새도록 울었다는 최바울목사. “두꺼운 발바닥에 박힌 유리를 핀셋으로 수도 없이 빼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아버지를 아들인 저도 몰라드린 부분들이 너무 많았어요.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려고 노력하는데 쉽지가 않네요.”

아들의 결혼식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신발을 신으셨다는 최춘선 할아버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맨발의 사랑으로 지켜낸 맨발의 천사. 그런 아버지의 삶을 닮아가고자 하는 아들의 마음이 욕심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하나님께 위탁하셨기에 은혜 가득한 무소유의 삶으로 사랑을 전하는 삶이 이어지고 있다.

최춘선 선지자의 동화상

1편:

2편:

최춘선 선지자의 아들의 고백

혹자는 최춘선 선지자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광인이라고 한다.
물론 이러한 모습을 보인다고 선지자가 아니다.
많은 광신적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고 이러한 전도 모습으로 인하여 많은 이들에게 기독교 선교에 관하여 부정적 시각을 제공한다.

그렇지만 최춘선 선지자의 모습을 영적인 인도하심으로 그의 정체성을 보면 그분은 우리가 보는 어느 종교에 미친 그러한 광인의 모습이 아니다.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이나 세례 요한 또한 주님의 은혜 없이 일반인의 시각으로 그는 단지 한 명의 광인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아래 댓글은 지체와 나눔을 정리한 글입니다.

지체1: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의롭게 된다는 바울 사도의
말씀을 생각합니다.
최 할아버지의 삶은 그 그리스도를 담아낸 것입니다.
참으로 그것은 축복이기도 하고 심판이기도 합니다.
선지자들의 말과 몸짓은 항상 아버지의 심령과 그 날을 의미합니다.
저 또한 그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내는 지극히 작은 도구로 쓰임 받았습니다.
최 할아버지의 가족들과도 그동안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분에 대한 더 많은 정보들과 이야기를 얻었지만…
나누기를 조심하였습니다.
사람을…그 이름을 높이는 것이 될까봐…
오직 할아버지는 “예수천당“을 말했습니다.
그의 걸음은 오직 예수뿐입니다.
아직 너무나 부끄럽지만…그 길을 고요히 따르는 것에 집중합니다.
이곳의 동지들도 그러하기를 소망합니다.
잘하였다…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구나…
하는 주님의 칭찬을 들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지체2:

높이 떴을 떄 더욱 작아지는 해처럼
깊이 잠길때 더욱 소리없는 바다처럼
작은친구야 소리없는 것들아
높게 살자 깊게 사랑하자..

세상의 높은 것들만 추구하고 꿈꾸던 나에게..
예수님처럼 낮아져 섬기고,, 더 낮아지는 삶..
내 주위를 둘러 보고 내 이웃을 더 사랑하고 더 겸비하고 낮아지는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 어린 마음에 자신의 옷이 하나 둘 없어질 때 마다 속상했었다고 전하는 최목사님…

우리 어머니도 남 에게 안쓰러운이웃에게 베푸는것을 참 좋아하셔
어머니의 그런 모습이 참 좋고 존경스러웠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닮아 갈려 노력하고.. 그분을 생각하지만…..

지체3:

잘 읽었습니다
눈물뿐 ….
도저히 그마음이 될수없을것같은 절망감 ….
그래도 이글은 나에게 무엇을 남김니다
아멘

작은자:

지체님들의 나눔에 얼마 전 어느 지체님으로 부터 받은 말씀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그 말씀을 읽고 한 노 사도의 진실을 알고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전부인지..
그리고 그 노 사도가 어떻게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는지..
최춘선 선지자도 이런 노 사도의 삶을 살았기에 진정 그리스도를
알았다고 생각 됩니다.
거짓이 난무할 때 주님은 그의 백성을 깨우치기 위해
이런 선지자를 지금도 보내시는 것 같습니다.

이 노 사도의 말씀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 때는 이 모든 것이 내게 너무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그 모든 것이 아무 것도 쓸모 없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것들 뿐만 아니라,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나는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쓰레기처럼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이제 압니다.

이로써 나는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빌립보서 3:7-8)

지체2:

어느 정도가 되어야.. 작은자님이 말씀하신 그런 경지의 고백이 나올수 있을까요?

한동대기도실에 붙어 있는 표어..
나는 사랑에 빚진자라..
얼마나 주님의 사랑이 감격스러우면 .. 얼마나 십자가 사랑이 감격스러우면.. 저러 고백을 하는걸까요…

성화는 급작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기에….
거북이 처럼 느릿느릿 주님의 제자의 길을 걸어가다보면
저에게도 저런위대한(이 고백또한 주님의 은혜의 바다에 사랑의바다에 푹..잠기지 않으면 불가능하죠. 저고백또한하나님의 은혜겠지요.)이 나올날을 기대합니다. 오직 주의 은혜로…..

작은자:

댓글을 읽어보니 지체2님은 청년 지체인 것 같군요.
청년 시절에 주님을 향한 마음을 갖는 지체님을 축복 합니다.

바울의 저 고백은 진정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이 그의 서신서에서 예수를 더욱 알기 원한다는 그의 고백의 의미를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바울과 동 시대의 예수님에 대한 역사적 예수님의 사건을 바울이 모를 리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와 대화를 하면서 또한 많은 사도들과 만남에서
그가 인간 예수님을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그의 노년에 그가 고백한 빌립보서 3장 10절의 말씀을 생각하여 보면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믿어도 너무 잘못 믿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역사적 교리적 예수가 아닌…
우리 삶에 살아 역사하시는 그분과의 관계..
그렇기에 바울은 그의 모든 것을 받고 따르고자 한 것 같습니다.

믿음과 정결함..
결단이나 자기 확신이 아닌
자기 실존에 직접 개입한 (이를 종말론적이라 합니다.)성령의 인도하심에 복종하여 그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그분의 계시를 받고 그분의 왕국과 뜻을 이루게 됩니다.
(여기에 악한 영은 우리를 직접 공격합니다.
그렇기에 영,육적 정결함..이는 진정으로 나의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주님께 골방에서 그분께 질 그릇같은 나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은혜를 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이 정결함은 믿음을 주시는 성령님의 임재와 역사에 꼭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께 드리는 누룩이 없는 산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 성령의 역사의 절정에서
역사적 교리적 예수님이 아닌 바울이 고백한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우리가
더욱 알게 되고 마침내 그분의 궤적을 우리가 따라가는 놀라운 능력을 얻습니다.
그 모습은 세상의 인간의 눈에는 미쳐가는 자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절대 부족함의 고백..
그것이 제가 소원하는 작은 자 즉 소자…
그리고 그 작은 자들을 사용하여 이루시는 종말의 역사..
그분께서 친히 인간의 역사에 간섭하시는 사건..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그 옛날 선지자들의 소망인 것 처럼....

지체3:

아멘.

예수 더 알기 원함은 크고도 넓은 은혜와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내 평생의 소원 내 평생의 소원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성령이 스승 되셔서 진리를 가르치시고
거룩한 뜻을 깨달아 예수를 알게 하소서

성령의 감화 받아서 하나님 말씀 배우니
그 말씀 한절 한절이 내 맘에 교훈 되도다

예수가 계신 보좌는 영광에 둘려 있도다
평화의 왕이 오시니 그 나라 왕성하도다

찬송가 506장

지체4:

부럽고…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