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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람들(동화상)

작성자
작은자
작성일
2014-10-10 10:26
조회
3277
이 글은 전에 삼시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하늘 창고에 글을 올리는 것 보다 이 곳에 다시 한 번 글을 올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씨앗 나눔에 글을 다시 올립니다.

다음 글을 작성하기 전에 한 편의 동화상과 글을 꼭 나누고 싶습니다.
(글은 다운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동영상의 설교자의 한 분인 Paris Reidhead 의 설교이고
제목은Ten Shekels and a Shirt 입니다.)

특히 루이스 부흥의 참여자인 던칸 켐벨 목사의 간증도 아래 동화상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동화상에 나오는 분들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Paris Reidhead (이 분은 성경 선생이면서 아프리카 선교사였습니다.)의 설교는 제가 올린 글 Ten Shekels and a Shirt의 내용입니다.
실은 그의 설교를 문서화 한 내용입니다.

인간 존재의 이유를 "하나님께 영광"에 두고 (그렇지만 한국 교회에서 설교에서 언급되는  "하나님께 영광"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있습니다.
이는 그가 아프리카 선교에서 너무나 아픈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 아뢰면서 고통을 주께 아뢸 때 성령께서 그에게 알려주신 말씀입니다.

지금 그의 이 설교는 많은 외국어로 번역되어 주님의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습니다.
실은 제가 이 부분을 번역을 해야하나 여러 사정상 빠른 시일내 번역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만일 이 글을 읽으신 지체님중 주님께서 깊은 부담을 주시면 많은 지체들을 (한국 교회의 많은 지체들)위해 수고해 주시면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동화상에서 말씀을 전하시는 분들에 대하여 간략하게 소개하면
동화상에 말씀을 전하시는
레오나드 레이븐힐(Leonard Ravenhill) 은 한국에서고 그 분의 설교가 책으로 나와있고(레오나드 레이븐힐 대부흥시리즈 ) 많은 지체들에게 소개 되었습니다.

토저 (A.W. Tozer) 주의 사람으로, 현대의 기독교내 우상에 대해 경고하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던컨 켐벨(Duncan Campbell)은 영국에서 하나님의 부흥의 산 증인이며 동화상에서 주님의 부흥의 역사를 이렇게 증거합니다.

" 하나님께서 모임의 모든 회중에게 갑자기 임하실 때 그들은 주님의 두려움에 사로 잡혔습니다. 어느 설교자의 노력에도 혹은 피조물의 열성있는 특별한 애씀이나 또는 피조물의 어떠한 노력에 의하여 조직된 어떠한 것도 주님의 역사를 임하게 하는 것이 아닌 오직 모든 회중을 사로잡은 하나님의 임재의 두려움으로 피조물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모든 노력을 중지하게 하는 성령에 의한 하나님의 역사를 깨달음으로 주님의 임재가 임하였습니다."

오스틴 스팤 (Austin Sparks)은 영국에서 24세에 목사에 임직되지만 그후 14년 후 그가 38세(1926년)에 목사직을 사임하고 (그는 1904년 웨일즈 부흥의 산 증인인 여성 사역자 제이씨 펜 루이쓰(Jessie Penn-Lewis)과 나눔으로 그녀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같은 영의 지체들과 함께 모임을 가짐으로 말씀 연구과 가르침 그리고 문서 선교에 그의 소명을 다하였습니다.
(그의 소명은 같은 영국인 말씀 선생인 핑크와 유사하였습니다.)

진정 주를 만난 산 증인들의 살아있는 말씀이 미혹의 영의 미혹에서 여러 지체님께 바른 영적 분별과 참 신앙에 대하여 도전을 주기를 기도합니다.

다음 글인 초대교회와 현대 성령 운동의 비교를 작성하기 전 이 동화상과 한 편의 글이 먼저 알려져야 한다는 마음이 들어 동화상과 글을 올립니다.

진정 분별을 통하여 주님의 왕국과 뜻이 주의 사람을 통해 주님의 때에 이 땅에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참고로 아래 동화상에서 루이스 부흥에 관한 던컨 켐벨의 간증은 1편 3:45에서 시작되고 2편3:27까지 계속됩니다. 그리고 2편 5:25에서 시작되어 3편4:20 까지의 동화상은 위에 설교 원문을 올린 Paris Reidhead 의 설교인 Ten Shekels and a Shirt 의 일부입니다. 루이스 부흥에 관한 글은 조만간 하늘 창고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1.



2.



3.



4.



참고로 이 동화상을 만드신 분의 이야기를 잠깐 소개하면
자신이 미국의 CCC(대학생선교회)에서 섬길 때 빌리 그레험 목사가 많은 사람들을 소위 강단에서 초청(Altar Call) 형식으로 인위적 구원의 역사를 주장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그 후에 성경과 초대 교부들의 글과 주의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진정한 구원은 전적으로 주의 주권이고
바른 복음을 전하는 것이 현 기독교의 많은 문제에 대해한 유일한 방법인 것을 깨닫고 이 동화상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구원의 완성을 위해 바른 분별과 오직 말씀과 기도와 함께하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래는 폴워셔의 한글 자막이 있는 설교입니다.
특히 두 번째 성령의 역사에 대한 설교는 현재 미혹의 영의 역사에 대한 성경적 분별을 제공합니다.
폴 워셔의 영적 전쟁에 대한 동영상입니다.



중생이란?



댓글을 정리하여 편집한 글을 올립니다.

지체1:

샬롬~
잘 지내시지요?
간만에 댓글 달지만, 작은자님의 글을 만나러 삼시에 가끔 들린답니다.오스틴 스팍스의 홈페이지를 알려드릴께요.
작은자님은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다른 지체분들과 나누고 싶군요.
아마 자제분이 관리하시는 것 같습니다.
스팍스 목사님의 모든 설교, 책자, 칼럼 등이 올려져 있습니다.www.austin-sparks.net저는 한국어로 번역된 책을 한 권 읽었었는데 (하늘 길의 개척자들)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몇 권 더 있었던 것 같은데 거의 다가 절판이라...

작은자님의 평안과 계신 곳에서 소명을 강건하게 담당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작은자:

긴 댓글의 시작 전에 이엠 바운즈의 기도와 순종에 대한 동영상을 권하고 싶습니다.



 

며칠 전 한 지체님과 나눔을 가지면서 Paris Reidhead 설교의 마지막에 모라비안의 두 젊은이가 복음을 위해 자신의 남은 생을 을 노예의 삶으로 던지면서

그들의 가족과 지체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께 그의 고통에 합당한 사례를 받으시기를!

이 마지막 말에 그 지체님께서는 깊은 충격을 받으셨다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지체님과의 나눔에서
심지어 구원의 주제도 나를 중심으로 주님의 말씀이 해석되는 현재의 비복음의 상황에서
모든 것이 주님의 나라와 뜻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진정한 복음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고민을 같이 나누었습니다.
(사실 신,구약의 전체적인 주제는 하나님의 주권으로 인한 인간의 구속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작성될 성령의 역사에 대한 발제 글에서 언급할 예정이지만
많은 지체분들이 많이 잘못알고 계신 내용중 하나인
성령의 사람과 미혹의 영의 인도자의 구별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하겠습니다.

누가 기자가 작성한 사도 행전은 초대 교회에 나타난 영적 혼재의 분별의 단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현재 많은 지체들이 병 고침 방언 예언 영 내림등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현상에 매우 집착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구약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인 그릇된 신앙의 모습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신명기 13장에 1절에서 5절의 말씀에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며 그를 경외하며 그의 명령을 지키며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를 의지하며 그런 선지자나 꿈 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에게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게 하려 하며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령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위와 같이 경고하셨습니다.
윗 말씀에서 거짓 선지자의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 질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게서 이를 허락하신 이유는 과연 그의 백성들이 진심으로 주께 마음을 다하고 그분을 진심으로 사랑하는지 시험하시기 위해 허락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과연 이적과 기사 영내림의 현상에 중심에 우린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저의 경험으로는 많은 영적인 분들이 하나님의 영광 그 분의 나라라고 말하지만
많은 경우 그 속에 자신의 영광이 감추인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누가 기자가 말한 사도 행전에서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영적 분별에 대해 잠시 언급하겠습니다.

사도 행전 3장에 베드로와 요한은 어느 날 오후 3시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기도하기 위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초기 기독교인들은 유대 전통에 따라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오후 3시에 성전에서 행하여지는 예식은 제물을 바치는 예식이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절기나 혹은 자신들의 상황에 따라 제물을 가지고 성전에 가서 예식을 행하였고 성전의 미문에는 성전에 들어갈 수 없는 병자나 소위 구약의 율법에서 말하는 많은 죄인들이 구걸행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들의 평소 규례대로 성전에 기도하기위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 앞에 평소처럼 구걸하는 한 앉은뱅이가 있었고 그 날에 주의 영이 그들에게 명하사 치료를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나사렛 예수이름으로 앉은뱅이를 치유하였습니다.
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의 솔로몬 행각에 있을 때 그 이적을 목도한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에게 몰려왔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그들에게

베드로가 그 사람들을 보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어찌하여 이 일을 이상하게 여깁니까? 또 어찌하여 여러분은, 우리가 우리의 능력이나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하기나 한 것처럼, 우리를 바라봅니까?(12절)”

위와같이 말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이 이적이 그들의 능력이나 경건에서 나오지 않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와 대조적인 사건을 보고하는 누가의 기록을 좀 더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사도 행전 8장의 마술사 시몬에 대한 내용입니다.
마술사라고 번역된 이 단어는 헬라어 마고스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마태의 기자는 동방박사를 나타내는 현인으로 사용하였고
누가의 기자는 부정적인 주술사로 표현하였습니다.
70인역의 예레미야서에서는 히브리어 Rab-Mag의 대응 단어로 나타냈습니다.(예레미야 39장3절)
역시 부정적인 내용입니다.
마태의 기자가 이 단어를 긍정적인 의미로 표현한 것은 (성경 전반에서는 이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입니다.)여러 의미가 있지만 여기에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사도 행전에 이 마술사란 단어는 바울의 전도 여행에서 바울에 대적한 엘루마 바예수에 대하여 사용했습니다.
엘루마란 단어가 아랍어 엘리몬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고 그 의미는 현인 혹은 능력자를 의미합니다.
이 바예수는 사도행전 13장 6절에 의하면 유대인이었습니다.(그의 이름이 전형적인 유대인의 이름이었습니다.)

마술사 시몬이 활동한 사마리아 (세바스테)는 북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거주한 지역이었고 그들도 모세의 율법을 지키며 사는 자들이었습니다.

사도 행전의 8장 10-11절에

그래서 낮은 사람으로부터 높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사람이야말로 '큰 능력자'로 알려진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고 말하면서, 그를 따랐다.
사람들이 그를 따른 것은 오랫동안 그가 마술로 그들을 놀라게 하였기 때문이다.”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생각을 하였다고 기록합니다.
그 이유는 그에게서 많은 능력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특히 “큰 능력자”란 단어는 메가스란 단어인데 이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단어입니다.
구약에서 이 “큰 능력” 혹은 “큰 위엄”을 나타내는 단어는 신명기 9장 26절과 29절에 하나님의 구속사의 역사로 표현되며
마가 복음 14장 62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사용된 권능자 즉 구속의 역사를 일으키는 자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의 많은 사람들은 (높은 위치의 사람으로부터 낮은 위치의 모든 이들이 그를 주님의 구속사를 행하는 사람으로 생각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행전의 기자의 기록처럼 단지 그의 이적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그 능력을 주셨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 나타나서 하나님의 나라를 예수의 이름으로 전하고 놀라운 이적을 행하고 후에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도들의 영적 의결로 베드로와 요한을 파송하여 성령 세례를 주는 모습을 보고 자신에게도 이 임파테이션 능력을 베드로에게 요구합니다.

말하기를 "내가 손을 얹는 사람마다 성령을 받도록 내게도 그런 권능을 주십시오" 하니,(19절)”

베드로는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의 영적 욕구를 위하여 돈으로 (이 경우 돈은 인간의 모든 방법을 의미합니다.)요구하는 시몬에게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23절)”

경고하였습니다.

바예수나 시몬은 이방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이고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남 유대와 북 이스라엘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공동체는 그들의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공동체는 그들을 하나님의 능력자로 생각하고 그를 따랐습니다.
단지 그들에게서 능력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위의 신명기 13장의 말씀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영적 능력이 하나님께로 부터 내려 왔다고 생각하였기에
이렇게 미혹의 길로 인도를 받는 다고 경고합니다.

그 이유는 신명기 말씀처럼
각 사람의 마음 중심에 진정 주님의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지 점검하시기 위하여 허락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대한 사랑을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예수의 말씀뿐 아니라 신 구약은

주의 말씀을 듣고 삶에서 행하는 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 베드로는 그의 이적을 보고 그에게 모인 사람들에게
그 이적이 자신의 능력이나 경건에서 오지 않음을 고백하고 오직 주를 찬양하였습니다.
마술사 시몬과 바 예수는 자신의 기득권과 영광을 위해 미혹의 영에게서 온 능력을 사용하였고
그리고 단지 주의 말씀보다 그 능력으로 진정한 주의 사람을 판단하는 어리석은 많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은 그 미혹의 멸망의 길로 갔습니다.

(초대 교부들은 한 목소리로 이 마술사 시몬을 모든 미혹의 영의 아비로 간주하였습니다.)
베드로의 고백과 시몬의 요구에서 본질적으로 주의 사람과 거짓 영의 사람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어려운 상황에 주의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고 싶어합니다.
그 마음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어떠한 것도 주의 영광과 권세 앞에 놓여서는 아니됩니다.

미혹의 영의 인도자들은 함부로 주의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하면서
많은 지체들을 지혜없는 자로 만들어
그들의 세력을 더욱 확장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누가 주의 사람이고 아닌지 우리에게 구분하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자신의 진정한 구원을 위해 말씀을 읽고 구분하십시오.

저는 복음이 외에 다른 것을 강조한 자들을 모두를 주의 사람으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역사의 각 부흥의 현장에거 영적 인도자의 이런 영적 현장의 미경험에서 나온 영적 미성숙으로 인해 잠시 이런 능력이 강조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좀 흘러 그 인도자는 복음으로 되돌아 와야 합니다.그렇지 아니하면 이들은 미혹의 영의 지도자이거나 성령 역사의 현장에서 악한 영의 공격을 받아 지배를 받는 현상입니다.)
그 복음은 주의 사람들이 귀한 순교와 박해로 우리에게 남기신 귀한 주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지체1님께

오스틴 스팤의 웹을 알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실은 저도 그 웹의 주소는 몰랐습니다.
읽으신 책을 저도 읽어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 성령 운동에 대한 글 후에 지체님께서 전에 제기하신 문제인 세상 권세 앞의 순종에 대한 글이 이제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바울 서신과 베드로 서신) 말하는 세상 권력(위정자에 대한 순종은)의 순종은 당시 한시적인 영적 계시입니다.
이 말씀은 예레미야 28장의 예언처럼 선지자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이 바벨론 왕을 섬겨야 한다는 주의 구속사의 계시를 받고 말한 것과 유사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성경의 계시중 어느 계시는 당시의 역사적 특수 상황에서 주님의 능력의 개입으로 한시적으로 요구하시는 것(이스라엘 민족의 정결 예식처럼)
과 시공간에 관계없이 일반적인 계시가 있는데
바울과 베드로 서신의 위정자의 순종은 이런 주님의 구속의 주권이 역사하는
특별 상황에 계시된 말씀입니다.
( 여기에 자세한 논의는 당시의 유대 문서와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해석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이 논의는 매우 깊기에 초대 교회의 성령 역사의 논의가 끝난 후 논의하겠습니다.)

이런 특별 계시가 일반화되어 많은 종교 세력들이 세상 기득세력과 결탁하여 자신의 이권을 챙긴 경우가 기독교 역사에서 너무 많습니다.
(소위 우민화 정책에 사용된 경우입니다.)

마지막에 성경 말씀해석에 대해 조언을 드리겠습니다.

현재 많은 영적 단체에서 성경을 해석하는데 은유와 비유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주께서 자신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주장합니다.
성경에서 예수께서 복음을 비유로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천국의 말씀을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사용하셨고
때로는 영적 이유때문에 사용하셨습니다.( 이 영적 이유는 악한 영의 영적 공격때문입니다.)
이러한 전통때문에 초대 교부증 한 명인 오리겐은 비유로 모든 말씀을 해석하려하였고 어거스틴
그의 책 “복음서의 제반 질문들(Quaestiones Evangeliorum)”에서
예수의 선한 사마리아의 이야기를
사마리아인은 예수이고 예루살렘은 천국, 강도는 사탄, 그 피해를 당한 자는 인간, 옷을 벗김을 당한 경우는 구원을 잃은 것을 말하고 제사장,레위인은 종교인으로 기름은 위로를 여관은 교회 그리고 여관 주인을 바울로 해석을 하였는데
어느 의미에서는 영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예수께서 당시 말씀하신 것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물론 성경의 말씀이 각 개인에게 상황에 따라서 성경 문맥과 다르게 이해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공적인 예배에서는 조심스럽게 해석을 해야 합니다.
단지 자신의 느낌이나 상상력으로 성령께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주장하는 영적인 지도자들이 많습니다.

성경 해석을 Exegesis라 하는데 이는 성경에서 본질을 선별하여 추출한다 (Ex)란 의미이고 Eisegesis 는 그와 반대로 자기 생각을 성경 본문에 주입하여 해석한다란 의미입니다.
요사이 소위 영적인 성경 해석의 경우
이런 Eisegesis가 대부분인 경우가 많고 이를 주님의 영께서 알려 주신 주장합니다.

행전에서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욱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7장 11절)"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17장 2절에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울은 그의 계시를 전함에 있어 "관례대로 "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였다고 합니다.

강론이란 헬라어 사본에서 "디알레고마이"라는 단어인데 이는 "철저하게 말하다" "토론하다""변론하다"라는 의미의 단어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한 것과 달리
바울은 "그의 평소의 말씀 선포의 방식대로"
토론과 변론으로 철저하게 성경을 기반으로 그의 계시를 선포했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뢰아 교인은 신사적으로(여기서 신사적이란 개방적이란 의미입니다.) 성경을 가지고 바울과 실라의 계시를 검증하였다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현재의 우리가 이렇게 하면 말씀을 가지고 논의하면 교리적이라고 혹은 바리세인적이라고 비판을 듣지만 성경은 놀랍게 바울은 이런 방식으로 말씀을 전했다고 증거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베뢰아 사람들은 바울과 실라의 말씀을 성경에 비추어(깊은 논의) 보아 계시를 받아들였습니다.

또한 행전 19장에 두란노 서원에서 바울은 3개월 간 강론하였다고 증거합니다.

성경은 배우는 자와 가르치는 자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한 마음으로 깊은 성경에 대한 논의가
진정한 계시를 받아들이는 기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공적 예배의 성경 해석은바울처럼 Eisegesis 보다Exegesis방식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체2:

“긴 댓글의 시작 전에”… 상당히 긴장하게 만드는 말씀입니다. ^^

올려주신 설교는 작은자님께서 예전에 알려주신 sermonindex에서도 추천되는 설교들 중의 하나로 올라와 있었는데 미루고 미루다가 이번에야 비로소 읽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구원에 관한 나눔이 있었다고 언급하셨는데 그러고보니 저도 언젠가 제 자신의 구원의 문제에 오랫동안 고민을 하다가 조나단 에드워즈의 글을 읽고 깨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구원의 문제에 관한 지나친 관심과 집착은 자아에 대한 깊은 사랑의 결과일 수 있다는… 구원이 우리의 신앙에 참으로 중요한 문제이긴 합니다만 이게 이렇게 자아에 집중되어져서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할 우리의 시야를 가릴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늘 관심을 갖고 작은자님의 글들을 기대합니다. 작은자님의 사역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이름만을 위하여 이루어지길 또한 기원합니다.

작은자:

지체2님의 구원의 문제의 깨어짐의 경험은 참 중요하다고 봅니다.
말씀을 읽다 혹은 그 말씀의 기반으로 하는 설교나 신앙선배의 글에서 구원의 문제의 본질을 깨닫거나 또는 불가항력적인 힘으로 깨닫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방식이 아닌 그 분의 여러 방법으로 각 사람에 맞게 역사한다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제가 폴 워셔의 글을 추천한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설교에서 그가 한 사람의 구원의 문제에 대한 논의에서
그 사람이 자신의 구원 문제에 도움을 요청할 때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단지 그 사람 옆에서 (당시 그 설교가 알레스카 지역에서 설교였을 것입니다.)돌아 갈 자신의 비행기 표를 취소하면서 그 사람 옆에서 같이 중보하면서 단지 주님의 은혜를 구한 내용이었습니다.

만일 그가 다른 설교자처럼 자신의 능력이나 혹은 그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몇 가지 질문으로 "이렇게 믿기에 형제님은 구원 받았습니다" (소위 Altar Call)라고 단언하거나
또는 찬양을 부르면서 설득력있는 목소리로 인간의 감동으로 "주님은 구원자이시고 형제님은 그 능력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라고 말하거나
또는 몇 가지 은사를 보이거나 경험하게 하여 -방언이나 예언 입신을 함으로- 형제님은 구원 받았다고 하였다
저는 폴 워셔를 추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말씀 선생의 경험에서 위에 언급한 여러 가지를 현상을 목도하고 경험하였지만 성경의 증거에서 ,진정한 영적 스승의 증거에서 그리고 저의 경험에서 오로지 주님의 주권으로 그 분의 은혜의 권능으로 오직 구원받음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진정 사랑을 가지고 중보와 그리고 우리의 무기력 ..구원은 그분의 절대영역임을 알고 단지 은혜만을 구하는 모습..
우리의 눈에 안타깝고 마음이 아파도 구원이 임하는 것은 아닌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단지 그 분의 주권..그래서 선택의 백성이 구원의 초청을 받았다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폴 워셔가 자신의 구원의 경험과 그의 사역에서 그리고 성령의 능력안에서 깨달음으로 구원의 본질적 문제를 선포하기에 그를 추천하였습니다.

다음 글에서 작성 예정이지만 1904년의 웨일즈 부흥의 한 명의 인도자인 제이씨 펜 루이쓰(Jessie Penn-Lewis)는 "십자가와 부흥"이라는 글에서 부흥의 현장에서 자신이 경험한 몇 가지 조언을 하였습니다.

그녀가 성령의 임재 현장에서 경험한 성령 역사의 방해 요소
3가지를 들었는데

하나는 각 사람의 심령에 말씀의 가르침에 굴복하지 않는 영, 타인을 용서하지 않는 영, 이생의 욕심을 꽉 잡고 있는 영

두번 째는 신도들의 삶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양심으로 주신 판단에서 그릇된 것과 바른 것을 무시하는 삶을 사는 행위.. 이는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는 것으로 이런 삶이 공동체에서 묵인되거나 허용되는 경우..

세번 째는 목회의 현장에서 (설교)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말하거나 증거하면서 하나님께서 합당하게 받아들이시지 않는 예배를 드리는 경우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사실 기초적인 양심으로 보면 이 제이씨 펜 루이쓰 권면은 현재 우리가 벌이는 무슨 성령 운동이나 평양 부흥 회복 운동이 얼마나 잘못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1965년의 인도네시아의 부흥에서도 성령이 임하자 각 공동체 인도자들이 분별의 은사를 받아 미혹의 영의 공격을 막았고 (같은 성령 운동이라 하지만 그들은 성경을 기반으로 소위 다른 성령 운동파중 미혹의 영의 지배를 받는 공동체를 경계하였습니다.) 그리고 성경 연구가 각 공동체의 역사 후 활성화되었습니다.

위의 던컨 켐벨(Duncan Campbell)자신의 부흥의 현장에서 오직 그분의 방법과 인도 그리고 인간의 어떠한 방식이나 의도가 필요하지 않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많은 인간이 소위 기독인이 되는 것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그의 백성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그분의 영광을 의미하는 그의 나라와 의가 이 땅에 계속 임하기를 원하십니다.
(참고로 주기도에서 "주의 나라가 임하시옵시면"에서 당시의 아람어나 히브리어에서 천국이 온다(Come)이란 단어가 없다고 합니다.(복음서 전체에 걸쳐 천국이 주어가 되어 온다라는 문장이 없습니다.) 아람어가 헬라어화 되면서 원래 의미를 잃엇다고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히브리 역사관에 전문 신학자인 영(Young)은 이 온다라는 단어가 아마 유지된다(Keep)라는 아람어에서 왔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럴 경우 주기도문의 해당 어구의 연결문인 "하늘에서 이뤄지는 것 같이"와 같은 병렬구조를 같는 다고 합니다.(당시 대부분 히브리 공중 기도문은 이런 히브리 영적 전통을 가지는 히브리 숙어의 병렬 구조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주기도문의 해석에서 보는 것 같이 주님의 나라가 갑자기 임하는 것이 아닌 예수의 천국 비유의 설교처럼 빼앗는 자의 (이 부분을 저는 영적 전쟁으로 보고 있습니다.)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 분의 방식으로 그 분의 영에 순종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확장된다는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진정한 부흥의 현장(부흥에도 인위적 부흥이 있기에)에서 이런 해석이 맞는 것을 보이고 있습니다.

구원은 그 분의 절대 주권..
그리고 그 구원에 열매로 팔복의 결정체들이 성령의 인도로 그 삶에 자연스럽게 나타난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복음주의 문제는 이런 자연스러운 성령의 인도함을 인간의 도덕이나 의지로 삶에서 보여 마치 우리가 예수와 바울이 말한 성령의 열매를 보일려고 노력한다는 점입니다. 그 열매는 인조 열매이고 생명력이 없기에 시간이 흐르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단지 구원의 경험때 우리 안에 내재하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살아가면 이런 열매들이 차차 우리의 삶에 보이게 될 것입니다.
이런 열매가 없으면 어떤 능력을 받았다고 하여도 그것은 거짓이라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작금의 복음주의와 은사주의에서 많은 절망감을 느끼며
폴 워셔의 설교처럼 오직 그분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할 때인 것 같습니다.

아래 동화상은 폴 워셔가 자신과 베닌 힌(Benny hinn)과의 말씀의 해석의 차이를 보이는 설명입니다.
만일 말씀 해석에서 베닌 힌의 경우와 자신의 경우 다 같이 "성경에서 이렇게 말한다"라고 해석하지만 그 해석의 기저에는 자신의 성령의 인도하심속에서 단지 느낌을 주장하지 않고 성경의 문장의 분석과 신학적 연구 그리고 기독교 역사에서의 해석의 관점을 조사하여 해석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공동체에서 그 해석을 서로 나누어보고 혹시 자신의 공동체가 잘못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두고 성경이 성령의 감화로 해석됨을 믿는 다른 공동체에 그 해석을 논하면서 만일 해석상의 의견에서는 기독교 역사의 전통 해석(아마 교부나 하나님의 사람들일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에서 논의를 함으로 자신의 해석의 문제의 가능성을 찾는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지혜는 유한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그렇기에 성령의 감화로 깨달았다는 성경 해석의 내용을 독단적인 해석으로 함부로 주장하지 않고, 그에 반하여 베니힌의 경우 해석의 문제에서 기독교 역사의 전통의 논의에서 지지를 얻기 힘들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종종 은사 운동가들의 성경 해석을 들을 때 그들의 상상력이나 혹은 (성경의 영적 전통과 달리)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베뢰아 교인들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세처럼 또 바울의 설교의 방식처럼 조심스럽게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의 바울의 서신을 읽어 보시면 요사이 은사 운동가들의 성경 해석가 얼마나 차이가 큰지 누구나 알수있습니다.
어떤 영감이다 하여 그 느낌을 따라가면 문제가 많습니다.
만일 그 영감이 성령이 주신 영감인지 확인하기 위해 교회의 역사속에서 같은 하나님의 증인들의 성경 해석을 비교해 봐야 합니다.

많은 지체들이 어느 설교자의 설교에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혹은 예배에 은혜를 받았다..
감동이나 위로를 받은 것이지 은혜라고 단정할 수가 없습니다.
이유는 은혜는 자신이 취하는 것이 아닌 하늘에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늘의 은혜는 가볍지 아니합니다.
하늘이 주신 은혜속에는 자신의 기쁨이나 평안함이 아닌
하나님의 경외심(두려움)과 함께 그 안에 그 구속의 능력에서 접하여
세상이 주는 그른 감각과 전혀 다른 기쁨과 평안함을 느낌니다.
후대의 교부들도 설교시 이런 감동을 주기위해 수사학을 공부하였지만
이는 성령이 주시는 감동이 아닙니다.

한 편의 웅변 혹은 감동적인 영화나 찬양 혹은 심리 상담을 받을 때
흘리는 눈물... 물론 그 안에 주님께서 주시는 감격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생명력이 없음을 목도하고 더 강한 자극을 주는 설교나 찬양
혹은 영적 집회를 찾는 것입니다.

 

베니 힌과 성경 연구비교



제가 폴 워셔를 역시 주의 사람이라고 확증하는 그의 간증입니다.

그의 말씀의 능력과 기도의 능력이 어디에서 왔냐고 질문하면
그는 단지 그분이 나를 구원하셨다...
이것이 제가 성경에서 그리고 신앙의 선배 초대 교부들의 고백과 제 영의 가르침과 동일한 진정한 구원자의 고백이라고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의 고백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국 자막이 있는 동화상입니다.



그리고 20 세기의 목회자의 선생이란

마틴 로이드 죤스

20 세기 그 많은 복음 사역자중 성령의 분별의 능력을 받아
많은 미혹의 가르침속에서 바른 복음을 가르친 영적 지도자중 한 분입니다. 그렇기에 어느 경우에는 독단적이다 편협하다 비판을 받았지만
그가 타협을 하지 아니한 것은 복음의 순수성이 지켜져야하고 그 바른 복음이
선포될 때 진정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였기에 영국의 많은 복음주의 지도자와 달리 복음의 선명성을 주장하신 분입니다.
의사로 삶을 살다 그에게 역사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영적 지도자가 되신 분입니다.
그는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성령에 의하여 자신이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함을 알게 되었고 구원에 대한 갈망중 성령께서 그에게 임하여

"나에게 필요한 말씀은 나의 죄성을 깨우고 그리하여 나를 회개로 인도하고 마침내 새로운 삶을 얻는 것인데 이런 말씀을 듣지 못했습니다.우리가 듣고 있는 말씀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란 추정에서 전하여지는 말씀 뿐입니다."

그는 서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복음속의 주님을 만나게 인도함을 받고 그분의 자비의 실재가 오직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단지 예수를 신뢰하는 것을 깨닫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직 주를 신뢰하는 것이 그의 모든 것이 될 때 그는 복음을 전하는 소명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 영적 지도자의 소명입니다.)

그는 당시 많은 교회의 지체들이 노동자층이었고 대부분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당시에 유행하는 감정적 설교나 지체들의 관심을 끌기위한 농담이나 또는 신문이나 어떤 사건에서 인용하여 복음을 전하지 않고 오직 성경을 기반으로 말씀을 전하였고 그러함으로 말씀이 그들에게 역사하는 것을 경험하고 마침내 그들이 오직 예수의 사람이 되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목도하였습니다.

전의 부흥이나 설교자와 달리 인간의 감정적 요소를 자극하거나 회심을 위하여 어느 인위적 분위기 혹은 설교의 효과를 주기위한 어떤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성경으로 말씀을 전하여 일시적이거나 감정에 의지한 회심이 아닌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인한 말씀이 역사하시는 진정한 복음의 회심이 공동체에서 일어나 주께서 주신 소명을 감당하였습니다.
많은 그의 공동체의 많은 지체들이 비록 고등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오직 복음으로 훈련을 받고 복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놀라움이 알려지고 그는 세계 각 국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복음주의 사역자의 지도자가 되었고 마침내 웨스트민스트 교회의 설교자로 초청을 받아 그 곳에서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신학교를 나오지 않았지만 20 세기를 대표하는 복음 주의 설교자로 많은 목회자의 선생이라 불리움을 받는 마틴 로이드 죤스 목사.

오직 성령께서 그를 인도하시고 그를 당신의 사람으로 사용하셨습니다.

그의 화려한 경력이 의미있는 것이 아닌...

그가 진정 구원의 본질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깨닫고
모든 것이 오직 예수라는 그 분에 중심이 맞추어지고 영광을 그에게 드리고
자신의 인간적 능력이나 경력의 화려함이 아무것도 의미가 없는 것을 깨닫고
그 놀라운 은혜를 감당하지 못해 성령의 이끌림으로 목회자가 된
마틴 로이드 죤스 목사...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그의 영적 분별력은 다른 많은 지도자와 달리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인한 구원의 절대성을 경험하고 성령의 은사로 놀라운 분별력을 가진 영적 지도자의 한분입니다.)

그의 인터뷰 동화상입니다.




웹 디자인에 관하여 무지한 제가 동화상을 이곳에 잘 올리도록 가르침을 준 웹도우미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전체 1

  • 2014-10-21 11:43

    하늘 창고에 루이스 부흥에 관한 글을 올렸습니다.
    3시에서 올린 글을 좀 편집하여 새로운 동화상과 신문에 작성된 일부 글을 함께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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