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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의 단상을 다시 시작하면서

작성자
작은자
작성일
2014-10-28 11:26
조회
3201
종말론의 단상이란 제목으로 전에 다른 곳에서 연속물로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종말론 신앙이란 저의 아이디인 작은자의  신학적 해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현재 잘못 해석되는 종말론의  문제점에서 벗어나 성경에서 언급된  예수 당시의 종말론적 해석관에서 성경의 말씀을 나누고 또한 기독교 역사에서 여러 신앙 선배의 실존적 고백 속에서 나타나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현존의 영광을 나누는 글의 나눔입니다.

동안에 지체와 나눈 글을 편집하여 작성도 하였고 개인 성경 연구의 글이나 모임에서 나눈 말씀을 정리하여 나눈 글이었습니다.

어떠한 신학적 혹은 역사적 관점만 강조한 것은 아니고 (좀 더 내용의 객관적 서술을 위하여 글의 내용에서 어느 정도 표현을 되었지만 ) 전체적인 성서와 초기 신앙 선배의 고백과 진정한 인도하심을 받은 선배들의 영적 교훈을 나누는 글입니다.

새로운 글을 위하여 장소를 준비하여 주신 주님께 감사 드리며 앞으로 나눌  글의 소개를 간략하게 하겠습니다.

8편:  소년 예수의 교훈.

복음서에서 유일하게 누가 복음 2장 41절에서 52절에 언급된 예수 나이 12세에 유월절에 가족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한 기록입니다. 초기 기독교 위경에서도 소년 시절의 예수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경에서 언급된 예수의 모습과 누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모습을 당시의 유대 상황에서 재해석하고 누가 기자가 우리에게 이 기록에서 전하는 교훈은 무엇인가를 고민할 예정입니다.

많은 지체들이 성서에서 언급된  예수의 공적 삶에 관하여 많은 교훈을 배우지만 그분의 공적인 사역이 시작되기 전에 그분의 삶의 모습과 신앙의 자세도 또한 우리에게 많은 영적 교훈을 제공합니다.

주님의 역사에 사용되는 자의 삶을 살기 위하여 (이 의미가 바로 종말론적 신앙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준비하는 자의 신앙의 자세로 삶을 살아가는 주의 지체에게 예수의 소년 시절의 신앙과 삶의 자세는 새로운 많은 영적 교훈을 제공을 할 것입니다.

또한 성령의 인도하심에 준비하는 지체에게  이 나눔의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준비하는 자로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알려 줄 것입니다.

9편: 복음서에서 언급된 영적 전쟁

이 나눔은 일반 지체를 위한 글이기 보다는 현재 영적 전쟁에 놓여 있고 또한 영적 인도하심에서 미혹의 영의 공격에 관하여 말씀으로 무장하는 지체를 위한 글입니다.  복음서를 중심으로 예수의 교훈과 시험에서 영적 전쟁의 의미와 교훈을 나눌 예정입니다. 누가 복음 4장 6절에서 사탄은 예수에게 시험을 하면서 자신의 주권에 관하여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말씀에서 이 땅의 권세를  사탄은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언급합니다.

초기 유대교의 문서에서도 이러한 표현이 있습니다. 초대 유대교에서 언급된 사탄의 권세를 좀 고민하면서 성령의 사역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고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이러한 초기 기독교, 유대 종말론 관점에서 어떤 영적인 교훈을 제공하고 영적 전쟁과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나눌 예정입니다.

10편: 에덴 동산의 영적 교훈

창세기의 에덴 동산 설화는 많은 도전을 제공합니다.

히브리어 아담이란 단어를 관사의 유무에 따라 성경 학자들은 여러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는 여러 해석의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어느 성경 공부에서 결혼이란 주제로 성경 공부를 할 때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성경적 결혼관에 관하여 여러 지체가 나눈 것을 들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지체도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에서 결혼의 주제로 교훈을 배웠을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해석의 일부는 맞지만 창세기에서 언급된  아담과 이브에서 배우는 내용은  우리가 배운 그러한 결혼에 관한 일반적 교훈이 아닙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를 소위 종족 보존을 위하여 만나게 하셨다는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창세기에 아담과 이브에서 사용된 히브리어를 좀 깊이 연구하면 매우 섬세하게 여러 단어가 사용됨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실 에덴 동산에서 사용된 동산이란 단어의 개념은 고대 근동의 문헌에서는 성스러운 곳을 언급합니다.

창세기에 언급된 아담과 이브의 내용은 매우 신학적이고 영적인 교훈의 말씀입니다. 이는 종말론 관점에서 하나님의 그분의 계시의 역사의 서곡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누가 복음서는 예수의 족보에서 아담에서 그 혈통의 시작을 언급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그의 사명은 창세기 2장 15절에 다음과 같이 표현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기에서 다스리다 번역된 히브리어 아베드란 칼동사는 섬긴다란 의미입니다. 이 단어의 고대 근동의 어원은 신을 섬긴다란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이 단어는 구약에서 레위 지파가 성전에서 제사장의 제식 행위를 할 때 사용되기도 합니다. 창세기 2장 15절에서 하나남은 아담을 에덴에 두고 (이는 성스러운 장소입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로 출애굽에서는 성막으로 왕국 시대에서는 성전을 의미하고 신약에서는 성령께서 임하셔서 성전이 된 그의 백성을 의미합니다.) 다스리게 하시고 (단지 종교적 제식 행위만을 언급하는 것이 아닌 그분의 역사에 참여를 언급합니다.) 지키게 하셨습니다.(지키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샤메르  동사는 목자와 같이 살펴 본다란 의미입니다. 일반적으로 목자가 양을 돌 볼 때를 표현할 때 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요한 복음서 21장에서  언급하신 내 양을 돌보라고 언급하신 말씀에 대응하는 히브리어 단어입니다.

사실 창세기에 언급된 아담과 이브는 사역은 단순하게 우리가 배워 온 남녀의 만남이나 창조의 설화의 교훈보다 주님의 사역을 위하여 준비된 자의 영적 교훈의 말씀인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의 설화에서 언급된 말씀의 영적 교훈을 고민하면 우리가 지금까지 배운 그러한  해석과 다른 매우 다른 종말론적 교훈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좀 더 고민하면  바울이 예수를 고린도 전서 15장 45절에서 마지막 아담으로 살려 주는 영이 되었다라고 고백한 영적 교훈의 가르침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앞으로 작성 할 3 편의 종말론적 단상에서 지체님과 주님의 은혜안에서 교통함이 이루어 지기를 소망하여 봅니다.

 

작은자 드림

나눔의 과정에서 아래 글에서 펀치넬로님이 던지신 질문에 관한 고민도 함께 나눌 예정입니다
전체 6

  • 2014-10-30 02:29

    우리가 \"믿음\"이라는 것을 간단히 정의하기가 어렵듯이, \"종말론적 신앙\"이라는 것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또 긴 역사와 그분의 사람들을 통해 과연 믿음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 보여주신 것 처럼, 종말론적 신앙이 어떤 것인지 이렇게 여러 각도로 조명해 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나눔의 과정에서 지체들간의 의견 나눔과 소통, 그리고 함께 성장하는 은혜가 임하기를 기원합니다.


    • 2014-11-27 11:26

      믿음이라는 것은 크리스챤으로서 가장 많이 접하는 단어이면서 가장 모르는 단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여기서 실상은 실제적인 보이는 것과 같은 물질 아닌 물질로 인식될 수 있는 하나의 상이라고 할 수 있는대요. 이 그림이 실제 물질처럼 여겨지거나 보여지기 위해서는 영적인 하나님과의 교제가 반드시 우선시 되어야 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의 심령안에 생성되는 기적적인 일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것이 발생할 때에 마음에 익숙해 있던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과 나의 의지로 인한 지식과 체험과 성향이 점점 부드럽고 희미해지고 강하게 잡고 있던 것들이 놓아지는 이상야릇한(?) 일들이 실제 각각 개개인에 따라 어느정도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므로 언급하기 힘듬^^;) 분명하게 경험되어지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첫단계가 생성되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때로부터 크건 작건간에 자기만의 하나님과의 체험이 생겨나게 되고 이 과정중 믿음을 통한 어떠한 성취들이 맛보아 알게되면서 이게 이거구나라는 믿음에 대한 또는 신앙에 대한 주체성이 마음에 자리잡게 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때에 따라 믿음의 깊이는 시간이나 연륜이나 경험되어지는(하나님 안에서...^^) 부분에 따라 달라지게 됩니다.

      저 사람은 믿음이 좋고 저 사람은 믿음이 크다라는 것은 사람의 기준이기도 하지만 본인 속에서부터의 단계를 지나면서 자신도 알게모르게 속안에 생성되있는 하나님과의 통로로인해 보통, 이론이나 무엇을 배울때의 그러한 배움 과정이 보여지지 않고 이미 배워있는 상태의 자기 자신의 속이 받아들이면서 진행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에 따른 여러 하나님의 기적적인 산물들은 기독교서점의 책들을 통해 또는 검증된 신앙의 선배들을 통해 이미 입증되어 있기 때문에 이와같이 믿음이라는 것에대해 조금은 복잡한 것 같지만 분명한 진행 과정을 야기할 수 있겠네요. 여러 지체들께서 같이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 2014-10-30 11:53

    사실 종말론적 신앙이란 주님의 계시에 의한 일하심이 구체적으로 이 땅에 실현되는 것을 말하고 그 사역의 목적이 그분의 선하신 목적인 구속사이기에 그 구원의 역사에 준비된 자세로 주님의 역사를 기다리은 신앙인 것 같습니다. 나눌 말씀은 이러한 자세에 관한 성경의 교훈을 나눔입니다. 여러 지체들께서 같이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 2014-11-04 02:05

    작은자님의 새로운 글들이 기대가 많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 2014-11-05 05:16

    이 주제에 관한 고민은 오래 전에 했습니다. 전에 어느 모임에서 나눈 자료를 좀 더 보충하여 글을 작성할 예정입니다. 감사하게 몇 주제에 관한 저의 성경 해석에 관한 최근의 학자들의 자료를 발견하고 좀 더 변증적 관점에서 글을 작성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창세기의 원 역사의 창조 설화에서 소위 제사장 관점의 해석관이 제가 영감으로 받은 고민이었는데 이 고민에 관한 몇몇 자료의 도움으로 좀 더 명확하게 논의를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 당시의 고대 유대 문헌의 도움(쿰란 문서의 다마스커스 문서나 공동체 규칙서, 그리고 몇몇 위경과 외경인 아담과 이브의 삶,모세의 묵시록,에녹서 70인역과 에스겔 탈굼역이나 유대 랍비 벤 시라의 문서등)으로 창세기의 에덴 동산의 설화의 제사장 관점의 해석이 예수 당시에 많이 해석됨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현재 학자들도 이런 예수 당시의 일차 자료를 활용하여 에덴 동산의 고대 유대인의 성경적 해석관을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특히 이들 문서에서 인용한 에스겔서 28장 13절인\"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은 에덴 동산에서 아담의 모습에서 원형적 제사장직과 영광의 의복(제사장이 입던 옷과 같이)을 나타낸다고 언급을 합니다. 10 편인 에덴 동산의 영적 교훈은 이러한 창세기 설화의 예수 당시의 종말론적 유대 공동체가 해석한 창세기의 해석의 전통에서 미드라쉬 관점에서 고민하는 나눔일 것입니다. 이 주제는 너무 크기에 단지 아담과 이브의 만남의 부분만 가지고 말씀을 나눌 예정입니다. 아마 지금까지 창세기 설화를 단지 창조의 신학적 관점이나 혹은 신화적 해석의 관점에서 이해하신 거의 모든 지체에게 창세기의 원 역사의 영적 교훈이 매우 심각한 도전을 제공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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