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상담, 질문과 답변, 토론, 자료 추천 등이 이루어지는 ‘자유 게시판’입니다.

로마서 7장에 관한 나눔

작성자
매인자
작성일
2015-05-30 07:07
조회
5278
샬롬!

두란노서원 게시판에서 마가복음 1장 말씀을 나누던 중에 이누하님께서 로마서 7장에 관해 좀 더 깊은 논의를 제안하셔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두란노서원에 올라온 댓글을 이자리에 옮깁니다.


매인자의 댓글
4. 부정의 전파에서 정결의 전파로 (40-42절)

제가 주님을 알게 되고, 처음으로 성경을 다시 창세기부터 읽기 시작해서 복음서에 다다랐을 때,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던 점 중에 하나가 예수께서 부정한 자를 '만져서(!)' 정결케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셔서 광야로 이끄신 후,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친히 그들과 함께하시고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시고(출애굽기 33장),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막을 짓도록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출애굽기는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게 임하신 것으로 마무리됩니다(40장).

이제 레위기에서는 이스라엘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거룩하신 분이신지, 그리고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얼마나 부정한 존재인지를 지루할 정도로 집요하게 보여줍니다. 당시 고대 근동에서 널리 행해지던 동물 희생 제사라는 틀 안에서, 죄악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는 피 흘림을 통한 죄 사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히브리서 9장). '부정'과 '정결'에 대해서 반복해서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단순히 더럽거나 깨끗함, 비위생적이거나 위생적인 것의 구분을 넘어서, 거룩하게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그리고 한편으로 악한 이 세상 가운데서 어떻게 구별되어 살아가야 하는지를 각인시켜 주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복음서까지 이어지는 성경의 내용은 인간은 부정을 전파할지언정, 정결을 전파하지는 못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음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니라 하는지라
학개가 이르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가운데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하니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부정하리라 하더라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들의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에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학개 2:12-14)

인간은 자신 스스로를 거룩하게 만들 수가 없습니다. 예수께서도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가 7:20-23). 바울 사도도 자신 안에 선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로마서 7:18), 자신은 곤고한(비참한) 자라고(로마서 7:24) 고백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이것이 역전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나병 환자와 접촉한 사람도 부정하다고 여겨졌기에 혼자 사회적으로 격리되어 살았고, 다른 사람이 지나갈 경우 접근을 막기 위해 손으로 입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라고 외쳐야했다고 합니다. 즉,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나병 환자에게 대시면 예수님 자신도 예식적으로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부정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반대로 부정한 나병환자가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정결이 전파되었습니다!

다윗의 시편 기자도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던 나병환자의 마음으로 탄식하며 기도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시편 51:10-12)

여기서 '창조하시고'라는 말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바라'입니다. '창조하다' 또는 '구분하다'의 의미를 가지는 이 단어는 성경에서 창세기 1장 1절에서와 같이 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창조 사역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시편 기자도 자신 스스로 자신을 정결하게 할 수 없음을...오직 하나님께서만 정한 마음을 창조하실 수 있음을 고백하며 눈물로 간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도 겸손히 은혜를 구하는 마음으로 정결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을 구하기를 바랍니다.

 

이누하님의 댓글

1
그렇군요. 주님은 정켱케 하시는 분입니다. 정결케 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2
이 내용이 이곳 이 시점에서 적절한 것인지 자신이 없습니다만^^
매인자님 글에서 언급된 내용중에 최근에 제가 관심을 가지고 생각을 하고 있는 내용이 있어서
한 말씀 드리고 싶네요.

다른 것이 아니라...
로마서 7장과 관련된 문제인데 이쯤이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 채셨지요
매인자님께서는 롬7장에서 묘사하는 사람이 바울사도라고 생각하시는 군요^^

저도 거의 평생을 장로교회를 다니면서 같은 해석을 지지하다가
(하긴 지지하고 말고 할 것도 없지요 그런가 보다 했으니까...^^)

최근에는 그리스도인 이전의 경험이라고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단지 성구 해석을 둘러싼 논쟁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은 무의미 하지요.
저는 이 구절에 대한 적절한 해석에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삶에 보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거든요

언젠가 로마서에 대한 나눔도 있겠지만
기다리다 숨 넘어 갈거 같아서...^^

가능하시다면 롬7장에 대한 토론방도 열어 주실 수는 없을까
조심스럽게 제안을 드려봅니다.

샬롬



그리고 로마서 7장 개역개정본을 아래에 인용합니다.

(롬 7:1)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롬 7: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롬 7:3)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롬 7: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롬 7: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롬 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롬 7: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롬 7:9)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롬 7: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롬 7: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롬 7:12)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롬 7: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롬 7: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롬 7: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롬 7:16)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롬 7: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 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롬 7: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롬 7: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 7: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롬 7: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롬 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전체 4

  • 2015-06-09 16:27

    =============================================================
    이누하님이 제기하신 계속되는 나눔은 http://heavenlyseeds.net/씨앗나눔/?mod=document&uid=176 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 2015-06-01 10:13

    본격적인 나눔을 하기 전에...

    1.
    우선 감사합니다^^

    댓글을 다시 한번 읽어 보니까
    매인자님의 생각을 제가 잘 파악한 것인지부터 잘 모르겠어요^^

    ...(바울)자신은 곤고한 자라고 고백합니다 (7:24)....
    그런데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이것이 역전되기 시작했습니다.

    매인자님의 댓글을 읽어 보니

    바울의 현재의 경험으로 생각하시는 것처럼 보이다가
    바울의 과거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난독증이네요

    2.
    이 본문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제게 있습니다
    별 재미는 없는 이야기지만...
    롬7장의 논의를 제안하게 된 상황 설명 정도는 되겠네요.

    몇 해 전에 자그마한 교회를 섬긴 적이 있습니다.
    교인 수는 200여명 정도 (장로교 합동)
    목사님은 총신대신대원 사경회를 며칠동안 인도하실 정도로
    지명도가 있으신 분이었는데

    로마서 강해를 하고 계시던 어느 날 (아마 금요일 밤 정도)
    목사님께서 제게 전화를 주셨습니다.

    대뜸 로마서 7장 14절 이후의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하시는 거예요

    순간 조금 황당했지만
    롬7장의 나는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의 바울의 현재 경험이라고 본다
    성숙한 신자이기 때문에 죄에 대해 애통해 하는 모습이 아닐까.
    우리가 점점 더 성숙해 질수록
    죄에 대한 민감성은 더 커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대략 이런 내용으로 생각을 말씀드렸지요.

    그 다음 주 주일 설교에서 롬7장을 바울의 현재적 경험으로
    해석하시면서 강해를 이어가셨던 기억이 납니다.

    음.. 목사님께서 나를 제법 인정해 주시는 군...
    은근히 기분이 좋았던 속물스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사실 목사님께 설명했던 내용은
    수십년간 장로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 오면서 들었던 내용었지요.
    개인적으로 이 구절를 진지하게 검토한 적은 없었어요

    3.
    지금 섬기고 있는 교회에서(감리교) 현재 로마서 강해중입니다.
    2주전 (5월 23일) 목사님께서 롬7장을 설교하시면서
    롬7장을 바울의 현재 모습으로 해석하고 말씀을 전하셨는데

    말씀의 주된 내용은...
    신자는 죄와 분투하는 사람이며
    죄를 가볍게 여기고 무감각하게 사는 것이야 말로 두려운 일.
    죄를 심각하게 애통하게 여기는 일도 어찌보면 주께서 주시는 은혜이다
    우리 힘으로는 죄를 이길 수 없으므로 예수를 계속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가 이미 죄에서 죽엇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죄에 대한 승리가 시작된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목사님의 말씀하신 전체적인 요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또 공감 할 수 있었습니다만...
    목사님의 본문 해석과 적용에는 동의하기 힘들었어요

    내가 목사님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으면 그뿐인데
    마음에 자꾸 부담이 오는 겁니다.

    그래서 목사님께 서신을 작성했습니다.

    롬7장에 대한 해석에 대해서
    이미 충분히 검토를 하시고 결론을 내리셨겠지만
    다시 한 번만 더 검토를 해 주시기를 부탁드렸지요
    기왕이면 부목사님도 여러분 계시니까
    함께 공부과제로 삼아보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감히 제안을 드렸습니다.

    생각해 보니 몇 해 전에는 담임목사님이
    설교를 하기 전에 롬7장에 대한 나의 견해를 물어주셨는데

    몇 해가 지난 지금 담임목사님의 견해에 대해
    다른 견해를 표명하는 서신을 올리게 되었으니
    조금 묘한 생각이 들더군요.

    4.
    사실 교인이 목사의 주일 설교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은
    대단히 조심스러운 일이지요.

    그래서 사실 롬7장에 대한 내 생각을 글로 적어보기는 했지만
    목사님께 과연 전달을 해 드리게 될지는 자신이 없었는데
    지난 주 금요일 예배당에 가서 전달해 드렸어요.
    장장 A4용지 25매나 되는 분량으로^^

    주제 넘은 일을 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어서
    마음에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는데

    목사님께서 바로 답장 메일을 보내주셨더군요.
    글을 잘 읽어보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감사하더군요.

    물론 목사님의 견해가 바뀌는 것은 쉽지는 않겟지요^^

    5.
    이런 에피소드가 제게 있습니다^^

    롬7장 14절 이후의 "나"는
    그리스도인 이전의 경험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결론이지요..

    이 공간에서의 나눔을 통해서
    보다 더 분명한 이해에 이르게 된다면 좋겠네요^^


  • 2015-06-04 15:08

    롬7:14~25에서의 묘사가
    "그리스도인 이전의 경험"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인(바울)의 경험"인가에 대한 논의를 위한 요청을 드렸는데

    저는 "그리스도인 이전의 경험"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말씀 드렸지요

    내가 이런 견해를 취하게 된 근거에 대해
    간단하게라도 먼저 설명을 하는 것이 좋겠군요.

    글이 너무 길어 지면 안되니까
    대략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글을 작성해 보겠습니다
    다만 화욜 이사를 해서 지금 완전 그로기 상태라...^^
    주말 정도에 작성해 보겠습니다.

    1. 롬7:14~25의 해석이 그렇게 중요한가?
    2. 그리스도인 이전의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이유
    3. 그리스도인 바울의 경험이라고 주장하는 근거에 대한 설명(반론)

    대략 세 번에 걸쳐서 작성해 보겠습니다.


  • 2015-06-06 01:45

    이누하님의 진지한 고민과 나눔이 기대가 됩니다. 이사하시느라 많이 피곤하실텐데 잘 마무리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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