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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7:14~25 나는 누구인가 (1)

작성자
이누하
작성일
2015-06-09 14:32
조회
4503
롬7:14~25 나는 누구인가? (1)

하늘씨앗에서 이 성경구절에 대한 나눔을 제안드렸으니
총대를 매는 차원에서 제가 글을 작성해보겠다고 했습니다만
아직 집안은 이사짐이 널부러져 있고 몸은 천근만근
그럼에도 마음은 콩밭에... 자꾸 숙제를 해야한다는...^^

이런 글은 조금 여유있고 차분하게 작성을 해야되는데...
토론의 편이를 위해서 글은 세 편으로 나누어 작성해 보겠습니다.

우선
롬7장에 대한 두 가지 견해와 그 입장에 대한 지지자들, 현대 학계의 흐름을 소개하고
이 성경구절의 해석이 그렇게 중요한가?
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지요.

1. 두 가지 견해

롬7:14~25에서 묘사되는 사람(=나)은 누구인가? 라는 문제는
교회사에서 아주 오래동안 신학적 논쟁의 주제가 된 유명한 성경의 ‘난해구절’중 하나이지요.
이곳에 생생하게 묘사되는 사람은 누구인가 -
신자인가? 불신자인가? 율법하의 유대인인가? 아담적 인류인가?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겠네요.

.그리스도인 이전의 경험이다 - 죄를 깨달았지만 아직 복음으로 인도되지 못한 상황
.그리스도인 이후의 경험이다 - 죄와 갈등하고 싸우는 그리스도인의 상황

오랜 논쟁이 있어 왔기 때문에 다양한 견해가 있으며, 사실 어지간한 해석과 주장들은 이미 다 나와 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아직까지 한 견해가 압도적으로 옳다는 판정을 받지는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언젠가 주님 앞에서 바울을 만나게 되면 확실해 지겠지만, 그때까지 모른 척 적당히 넘어가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지요.

그렇다면 제가 앞으로 이야기 할 내용들도 특별히 기상천외한 해석일 수는 없고^^
그동안 제기된 여러 가지 주장들을 살펴본 후에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을 취해보는 것이지요.

물론 제가 취한 견해가 충분히 압도적으로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 이 입장이 쉽게 바뀌리라 생각하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설득력 있는 주장을 만나게 된다면 나는 언제라도 내 입장을 바꿀 수 있는 잠정적 결론입니다.^^

2. 두 가지 입장의 지지자들

(1) 그리스도인으로 보는 견해 (거듭났지만 죄 때문에 끊임없이 갈등하는...)

어거스틴 (후기에 이 견해로 바뀜), 루터, 칼빈, 존 오웬등의 청교도, 조나단 에드워드....,
스펄전, 찰스 하지, 제임스 페커, 제임스 던, 크랜필드
이름만으로는 완전 드림팀입니다^^

흔히 전통적인 견해로 간주되는 해석인데, 기독교 서적이나 설교들을 통해서 롬7장의 경험을 죄와 분투하며 신음하는 그리스도인의 경험으로 묘사하는 경우는 대단히 많을 것입니다.
(존 라일의 거룩)

어거스틴이 최초로 이런 견해를 주장했다고 하는데, 종교개혁에 미친 어거스틴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개신교에서 오랫동안 이 견해의 지지자들의 많았던 것이 이해가 됩니다.

최근에 제가 읽은 자료중에서는
존 파이퍼, 티모시 켈러도 이런 견해를 주장합니다.

특히 장로교가 대세인 한국교회의 강단에서는 이 견해가 압도적인 비율일 것입니다.
나는 설교시간에 이 해석 이외에 다른 해석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교회생활 짬밥 53년째입니다)
이곳 하늘씨앗에 참여하는 지체들도 대부분 이 견해가 많을 것이라고 추측해봅니다^^

2)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견해 (이스라엘, 그리스도인 이전의 경험)

속 사도들, 고대의 교부들,
경건주의자들, 존 웨슬리, 찰스 피니, 리델보스, 안토니 후크마, 케제만
존 스토트 (구약의 신자들로 봅니다, 그리스도인은 아니지요...)
로이드 존스 (회심의 과정에 있는 사람, 절대 신자의 경험이라고 볼수 없다고 주장)
더글라스 무, 막스터너, 고든 피, 톰 라이트....김세윤, 권연경, 이한수, 홍인규
최근에 제가 읽은 내용중에서는 이 입장을 지지하는 학자들이 더 많네요.

이 견해는 18~19세기 경건주의자들에 의해 주로 제기되었다고 합니다.
죄와 대항해 이겨내는 기독교적 생명이 없음에도 신자로 여기는 것은 옳지않다는 거지요.

유의할 만한 것은 어거스틴 이전 속사도들 초기교부들은 롬7장을 ‘그리스도인 이전’의 경험으로 해석했다는 것, 신약교회의 초기에는 이 견해가 통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이 견해가 새로운 주장이 아니라, 오랫동안 전통적인 견해라고 여겨졌던 어거스틴의 견해가 오히려 새로운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는 이야기 지요...

신약시대 교회의 초기입장이라니...저는 왠지 저울 추가 이쪽으로 조금 더 움직입니다.^^
현재는 여러 신학적 배경에서 두루두루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3. 현재 학계에서 롬7장을 해석하는 주류는?

물론 내가 학계의 해석을 충분히 다 검토할 역량이 있는 것은 아니고
기독교 서적을 읽다보니 관련된 설명을 몇 곳에서 발견했습니다.

제임스 페커 <성령을 하는 지식> P379
박영돈 <성령충만 실패한 자를 위한 은혜> p238 – 일독을 권할만한 책입니다
고든피 <성령, 하나님의 능력을 주는 임재> p90
- 이 책은 바울의 성령론을 다룬 엄청난 저작입니다. 두권 분량 2000페이지가 넘는 대작
- 이 책의 요약본이 <바울 성령 하나님의 백성 (좋은 씨앗)>이라는 소책자가 있습니다.
요 책은 읽기에 별 부담 없습니다.

페커와 박영돈은 둘 다 신자의 경험이라는 견해를 취하는데, 자기들이 취하는 해석이 이제는 소수의 해석이고 ‘그리스도인 이전의 경험’이라는 해석이 다수(주류) 해석이라고 설명합니다.
자기 입장을 소수의견이라고 하니... 맞겠지요.

고든피는 위의 책에서 이 구절과 관련된 주해를 하면서, 제임스 던 이야기를 하는데 제임스던이 자기의 주장을 소수의견으로 여긴다는 말을 한답니다. 고든피가 부언하기를 자기의 체험으로는 일반대중서적이나 교실 교회의 분위기는 학계의 판도와 다르답니다 (완전 공감^^)

유럽 대륙 대부분의 학자는 롬7:14~25이 율법의 통치아래 죄의 세력에 포로가 된 인류의 절망적인 모습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묘사하는 것으로 봅니다.

즉, 어거스틴 칼빈적 해석이 오랫동안 전통적인 견해로 다수에게 지지되었지만,
오늘날에는 '그리스도인 이전의 경험'이라는 견해가 학계의 주류. 다수의견으로 보입니다.

물론 최근 연구동향이 절대적으로 정답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신학자들의 성경해석 능력은 축적된 연구성과라는 토대들이 있으니 점점 더 정확하게 해석되는 부분이 있을 것은 분명합니다. 하여 새롭게 얻어지는 신학적 통찰들은 중요하지요.

지나가면서 책을 한 권 소개하고 싶네요.
김세윤 교수의 <칭의와 성화>라는 책인데

이 책의 내용중 칭의에 대해 법정적 범주에 치우쳤던 전통적인 해석의 문제들이 바울에 대한 새관점 학파들과의 논쟁을 통해 관계적 범주의 칭의론으로 풍성해지고 보다 성경적인 칭의론이 확립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어쨌든 과거의 신학자들보다 현대의 신학자들이 해석에서는 유리한 위치를 점하지요
저는 점점 더 많은 신학자들이 롬7장의 주류 해석쪽으로 한 표 던지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학계의 귀한 통찰들이 일선 교회나 목회자들에게 전해지는 시차가 있는 것이 문제제만...

4. 이 구절의 해석이 과연 중요한가?

뭐 그렇게 난해한 구절을 가지고 씨름을 하느냐.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을 한다고 해도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을 강조하는 데
별 상관은 없는거 아니냐...?

존 파이퍼는... 이 구절의 나를 어떻게 해석하더라도 기독교인의 성화의 삶과 관련하여 잘못된 가르침으로 이끌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경험으로 해석하면서도 다만 이 모습이 그리스도인에 대한 전반적인 모습은 아니라고...다소 유연하게 설명을 하고 있네요
즉, 그리스도인이 언제나 죄에 실패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찰스피니는 이 사람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사람을 그리스도인의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다 현재 자기의 경험과 부합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야말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총신의 이한수교수...
어떻게 해석하는 가에 따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미친다.

더글라스 무...
이 사람을 누구냐로 보느냐에 따라서 여러 가지 신학적이고 실제적인 문제들에 큰 영향을 미친다

* * *

나는... 이 구절의 적절한 해석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특별히 오늘 한국교회의 상황에서는 더욱 더

우리 모두는 오늘날 기독교가 개독교라는 유래가 없을 정도의 처참한 비난을 받는 상황에 대해 가슴 아파합니다. 그 비난이 충분히 정당하다고까지 생각되기에 더욱 더 안타깝지요.
(나는 지금의 이 상황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차마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한국 기독교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여러 가지 원인이 무자비하게 혼재되어 있겠지만
그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구원론이 왜곡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원론부터 구원받아야 합니다!

구원에 대한 천박한 이해
오직 믿음에 대한 오해, 믿음과 행위의 분리,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견인론...
결국 교회의 위기는 신학의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언젠가 이 공간에서 구원론에 대한 나눔을 기대합니다.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그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구원론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할 수는 없고 롬7장의 해석과 관련하여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국교회의 구원론이 엉망으로 왜곡된 것이 타락의 한 원인이라면
롬7장에 대한 잘못된 해석도 그 한 원인을 제공한 것은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깊이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성경구절을 잘 못 해석한 것에 그렇게 큰 혐의를 씌워도 되는 것인가?
예... 저는 충분히 그렇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부터 롬7장에 대한 생각을 하면 내게는 늘 그런 생각이 자연스레 떠 올랐습니다.
왜곡된 구원론과 왜곡된 롬7장의 해석이 이상하게 그림자처럼 한 세트로 따라다니는 겁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지요.
(지금부터는 조금 거칠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한국의 개신교는 장로교가 압도적으로 약 70~80% 정도
장로교가 이렇게 많은 것은 사실 우리 나라만의 독특한 상황입니다.
장로교는 TULIP으로 표현되는 칼빈주의 5대교리가 유명하지요.
저는 튤립의 모든 것이 문제가 있다고 믿지만 그중에서도
무조건 견인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 교리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감리교에서도 때로 장로교의 교리를 주장하기도 합니다.
한 예로 문제 많은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가 성도의 무조건견인을 주장한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장로교가 확실히 갑입니다

(다시 한번 거친 표현을 이해 바랍니다)
장로교 교인들은 죄를 가벼이 여깁니다.
신자도 죄를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신자도 죄를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죄를 지어도 결국 천국에 가는데는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죄에 대해서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쨋거나 나중에 구원은 받게 된다고 믿습니다.

교회에서 대 놓고 이렇게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자들은 암암리에 이렇게 믿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그 결과 한국교회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늘 이렇게 이야기 하기를 좋아합니다.
롬7장을 봐...바울도 죄와의 투쟁에서 이렇게 실패하잖아
하물며 나 같은 연약한 신자가 어떻게 죄와 싸워 이기겠어...그건 불가능해...
그래도 예수님이 내 죄를 다 용서해 주셨으니까 괜찮아...
어쨌든 결국 나는 구원을 받을 꺼야
나는 구원을 확신해!!!

칼빈주의 예정론, 견인의 교리, 롬7장의 왜곡된 해석
이런 것들이 모두 함께 물려 한국교회의 타락을 유발시킨 주범이라고 이야기 한다면
과연 지나친 것일까요...

한국기독교는 교회사 이래로 유래가 없을 정도로 타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장로교가 거의 대다수인 한국교회의 상황과 혹시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롬7장의 왜곡된 해석이 그 한 원인을 제공한 것은 혹시 아닐까요?

장로교가 거의 대부분인 한국교회 상황에서 거의 모든 신자들은
롬7장의 경험이 그리스도인의 경험이라는 설교를 계속 들으며 신앙생활합니다.
롬7장의 경험속에서 자신의 경험을 자연스레 연결시킵니다.

그 결과로 대부분의 신자들의 자신들의 영혼의 참된 상태를 잘 모릅니다.
스스로를 속이고, 스스로 심각한 기만에 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거짓된 구원의 확신속에서 살아갑니다. (사실은 나의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롬7장은 기독교의 구원과 관련하여 대단히 중요한 핵심적인 진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롬7장을 그리스도인의 경험으로 이해한다면 기독교의 진리가 아주 이상하게 꼬여 버립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데 그 복음이 아주 초라하게 되어 버립니다.

롬7장이 그리스도인의 경험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복음을 아주 이상하게 변질시키는 것입니다.

롬7장이 그리스도인의 경험이 되어 버리면
롬8장의 영광스러운 선포가 복음의 핵심이 무뎌진 칼날처럼 힘을 잃어 버립니다.

그래서  저는 롬7:14~25에 대한 적절한 해석이
지금 이 시점에서 한국교회에 제법 시급하게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런 글은 조금 차분하게 적어가야 하는데, 시간은 없고. 마음은 급하고...
그저 생각을 나누어 보자는 차원에서 편안하게 적어보았습니다.
조금 거칠더라도 이해를 부탁합니다.^^
전체 1

  • 2015-06-09 15:46

    1.
    제가 다른 교회 목사님들 설교를 일부러 찾아 듣는 편은 아닙니다만
    가끔 들러서 설교를 챙겨 듣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한 때 건강이 많이 안 좋으셨다가
    아드님으로부터 간 이식 수술을 받고
    다시 건강이 회복되어 교회를 개척하여 섬기는 목사님 인데

    용인 말씀샘교회의 정병선목사
    설교가 진지하고 경청할 만 합니다.

    책도 여러 권 나와 있습니다.
    제가 읽은 책은...

    어느 목회자의 고백
    신앙의 마스터 클래스 (욥기)
    마가를 통해본 예수와 한국교회
    마가를 통해본 예수와 제자들

    아직 읽기 못한 책은...

    병상에서 부르는 노래
    행복을 살다

    목사님이 아드님으로부터 간 이식 수술을 받는 이야기는
    뭉클하고 감동적입니다.

    2.
    정병선목사가 작년부터 구원론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32회의 구원론 설교를 했네요.
    얼마 후면 구원론 설교가 마무리 될 것 같습니다.

    교회 홈피에 방문해 보시면
    설교문까지 올라와 있어서 좋습니다.
    (말씀샘교회 검색)

    설교 한편을 경청하려면 40여분 걸리지만 읽는 데는 10분이면 충분하니
    30여편의 구원론 설교를 다 읽어보는데
    하루면 충분합니다.

    정목사님의 구원론설교를 들으면서 느끼는 것은
    저와 너무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계셔서
    대부분 별 무리 없이 기꺼이 동의하게 되는데...

    가끔 신자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약간씩 동의하기 힘든 면이 있더군요

    드디어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5월 31일 설교에서...
    롬 7장에 대한 언급을 설교중에 지나가면서 하더군요...
    정목사님은 롬7장의 사람을
    고민하고 갈등하는 그리스도인의 경험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방식의 롬7장 해석의 여파는
    구원 받은 자의 삶에 대해 묘사 할 때 마다
    조금씩 영향을 미치더군요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 제가 자꾸 부대낌을 느꼈던 거지요
    아마도 정목사님에게 제법 긴 서신을 보내게 될것 같아요.

    아마도 이 구원론 설교도 '대장간'에서 출간될 것 같은데
    순전히 저의 생각입니다만...

    이 부분과 관련해서 목사님께서 조금 생각을 바꿔 주신다면
    더 좋은 설교가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어서

    제가 오지랍이 넓지요...^^

    어쨋거나 공교롭게 제가 오래동안 고민하던
    롬7장과 관련하여

    우리 교회 목사님도, 가끔 설교를 챙겨듣는 정목사님도
    비슷한 시기에 언급을 하셨는데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제 마음이 썩 좋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지 견해가 나와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진지하고 훌륭한 목사님들 조차
    롬7장의 해석에 대해 이렇게 오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마음에 안 좋아 지는 것이지요...

    혹시라도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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