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edience-is-action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한적이 있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구원의 새로운 삶을 살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때 이렇게 대답을 한 기억이 있다.
마가복음 6장에 헤롯왕은 세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고 심지어 보호까지 하였다고 기록합니다.
특히 요한의 말을 들을 때 헤롯왕은 크게 번민하며서도 불만없이
흡족한 마음으로 그의 말을 받아 들었다고 기록합니다.
사도행전 24장에서는 벨릭스 총독은 자신의 아내와 같이
바울의 복음을 듣고 두려워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두 사람중 하나는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고 다른 하나는 그를 심판대로 보냈습니다.
두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터 복음을 듣고 두려워 하고 심지어
그 말씀을 자신이 받아들여 고민까지 했습니다.
우리 역시 복음을 듣고 어떻게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저는 헤롯왕과 벨릭스가 보인 반응보다 더 못한 반응을 보인 많은 신자를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헤롯과 벨릭스가 보인 깊은 고민과 두려움으로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무엇이 문제일까요?
물론 하나님의 선택이 결정적이겠지만 우린 그 결정을 쉽게 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눈에는 무엇이 결정적 차이를 보였을까요?

답은 순종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순종..
순종은 입이나 귀로 하는 것이 아닌 행동을 요구합니다.
순종에 따라 나의 생각은 변하고 그에 따른 행동이 변하는 것입니다.
그 순종은 인간의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그분이 인정하신 순종이어야 합니다.
만일 그분이 인정하지 않는 순종은 전부 거짓이고 자기 만족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속지 않으신 분입니다.

성경에서 순종에 관한 잘 알려진 말씀 중 하나가 사무엘상 15장 22절의 말씀일 것이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 말씀은 사울 왕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한 행동을 보고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의 심판을 언급하기 전에
그에게 순종이 어떠한 종교적 행위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언급한 말씀이다.

이 말씀은 후에 여러 선지자에게 여러 의미로 인용이 되었다.
이 순종에 관하여 자세한 의미를 언급하기 전에 이 말씀의 배경을 이해하고
이 말씀이 현재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어떠한 영적 교훈을 제공하는지 나누겠다.

사울 왕은 사무엘에게 불순종의 경고와 함께 다음과 같은 심판의 저주를 받는다.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사무엘상 15:23)

사울 왕은 사무엘의 입에서 선포된 하나님의 저주를 두려워하면서
사무엘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죄를 사해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니
(사무엘상 15:24-25)

그러나 사무엘은 단호하게 하나님의 저주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사무엘상 15:26)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사무엘상 15:28-29)

사울 왕은 너무나 마음이 안타까워 사무엘의 옷을 잡고 찢어질 정도로
그의 죄 사함을 위해 부탁을 하나 그는 단호하게 행동을 하였다.

사울 왕은 이러한 사무엘의 모습을 보고 그러면 자기와 함께 백성에게
돌아가 여호와를 경배하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이러한 사울 왕의 애절한 모습을 보고 사무엘은
그와 함께 백성에게 가서 여호와를 경배하는 예식을 드렸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울 왕의 종교적 제식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저주는 그에게 실행되었다.
가장 먼저 발생한 사건은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악령이 그에게 임한 사실이다.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사무엘상 16:14)

사실 사무엘은 자신이 선지자 활동을 하면서 베냐민 지파의 사울에게 직접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첫 왕으로 지명하였기에(사무엘상 10:1) 그에게 남다른 깊은 애정을 품고 있었다.

사울 왕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을 이행하지 않자 여호와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한다고 계시하셨고,
그는 말씀을 받고 근심하며 온 밤을 여호와께 사울 왕을 위해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느니라“(사무엘상 15:11b)

또한 사울 왕이 선지자에게 같이 백성에게 가서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게 해 달라고 부탁했을 때
처음에는 거절하였지만 결국 그와 동행을 하여 예배를 같이 드렸다.

마지막으로 그가 사울 왕에게 하나님의 저주를 선포하고
라마로 돌아가 그가 죽을 때까지 다시는 사울 왕을 만나지 않았지만
성경은 다음과 같이 사무엘이 사울 왕을 향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사무엘상 15:35).

여기서 슬퍼한다는 히브리어의 원 의미는 마음이 너무 아파 통곡을 한다는 의미이다.
그가 비록 선지자로 사울 왕에게 하나님의 저주를 전하였지만,
사울 왕을 향한 그의 마음은 처절한 것이었다.

사울 왕이 순종하지 아니한 행동은 아말렉과 전쟁 전에
사무엘에게서 그들에게 속한 재산과 생명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명하신 것을 이행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사무엘이 그에게 저주의 말씀을 가지고 왔을 때
순종하지 아니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하였다.

사울이 이르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하는지라.” (사무엘상 15:15)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사무엘상 15:21)

그는 아말렉에게서 승전물 중 좋은 것을 골라 하나님께 감사의 제물로 사용하고 싶어
모든 것을 진멸하지 않았다고 변명을 하였다.

사실 사울의 이러한 행동은 백성 앞에서 전쟁 승전의 화려한 예식을 행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고백을 하였다.
(당시의 고대 근동 문화에서 전쟁 후 승전의 영광과 왕권 강화를 위해
승전물을 가지고 자신이 섬기는 신 앞에서 제사를 드리는 행위가 일반적이었다)

과연 사울 왕의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영이 떠나고
악령이 임하는 그러한 저주를 받을만한 잘못된 행동이었나?

사울 왕의 뒤를 이은 다윗은 헷 사람 우리아 장군의 아내와 밧세바를 범하고
그 죄가 공개될까 두려워 충성스러운 장군인 우리아를 모살(謀殺)하였다.(사무엘하 11장)

다윗의 이러한 악한 행동과 사울 왕의 불순종을 비교할 때 당신은 어느 죄가 더 크다고 생각하는가?

사울 왕은 다윗처럼 살인도 하지 않았고 간통을 하지도 않았고
단지 전쟁의 승리를 하나님 앞에서 기념하기 위하여 승전물의 일부를 남긴 것이다.

우리의 종교 윤리 의식과 자연 윤리 의식으로 볼 때도
다윗이 더 큰 죄악을 행하였다고 생각을 할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다윗은 용서하였고 사울은 용서하지 않았다.

심지어 사무엘은 사울 왕에게 승전물 중 좋은 것을 선택하여 하나님 앞에서 경배드리는 행위를
점치는 죄와 같고 우상에게 경배하는 것과 같다고 계시를 하였다.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사무엘상 15:23 b)

과연 사울 왕의 하나님 앞에서 이러한 종교적 경배행위가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죄의 회개에서 생각하는 죄란 무엇인가?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관점과 영적인 관점에서 하나님 앞에서 죄는 우리의 상식과 매우 다르다.

사무엘의 사울 왕에게 언급한 순종에 관한 말씀과 같은 의미의 말씀이 성경의 여러 곳에서 언급되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세아 6:6)

예수께서는 사무엘이 언급한 순종에 관한 말씀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9:13)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마태복음 12:7)

순종과 하나님을 아는 것 그리고 긍휼이 예배(제사)보다
더 중요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예수의 말씀에서 자비란 우리가 윤리적인 의미에서 언급하는 단순한 자비가 아니다.
이 자비란 단어와 함께 예수는 구원 사역을 같이 언급을 하셨다.

순종, 하나님을 아는 것 그리고 자비란 어떠한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여기에서 나오는 공통적인 개념은 구원사를 의미하고
이 구원의 역사는 인간의 어떠한 종교적 예식 행위보다 더 중요하고 귀하다.

이 순종의 구원사적 의미를 깨달으면 우린 종교 윤리적인 다윗의 죄악과
사울 왕의 불순종의 영적인 죄악을 알 것이고 왜 다윗은 죄 사함을 받고
사울은 죄 사함을 받지 못했는지를 깨달을 것이다.

다음 글에서 이 주제에 관하여 계속 논의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