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연관된 성령을 받았느냐란 질문에 교회를 다니는 많은 사람은 “성령을 받았다“라고 쉽게 대답을 한다.
신약 사도행전에서 오순절 이후 성령의 역사가 많이 언급되었다.
사도행전에서 사용된 성령과 연관된 동사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현재 “성령을 받았다”란 의미가 얼마나 왜곡되었는지 알았으면 한다.

사도행전 2:3: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이 임한 광경을 작성한 말씀이다.
여기에서 성령이 각 사람에게 “임하였다”라고임하였다” 라고 작성하였다.
헬라어 카니조란 동사가 사용되었는데 이 단어의 의미는 “앉는다“란 의미이다. 즉 임재를 나타내는 단어이다.
명확하게 성령이 임재를 추상적인 의미가 있는 단어가 아닌
동작의 동사로 표현하여 성령의 임재를 뚜렷하게 표현하였다.

사도행전 2:27: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구약의 요엘 서의 계시를 언급한 말씀으로 “부어 준다.“란 단어도 헬라어 엨케오란 동사를 사용하였다.
이 단어는 어떤 용기에 “채운다.“란 의미로 사용된다. 종종 은유적으로 권세를 받는 장면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렇게 성령과 연관된 동사는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의미가 아닌 구체적 행동이나 상태를 의미한다.

사도행전 2:38: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베드로가 자신의 설교를 듣고 반응하는 무리에게 언급한 대답이다.
여기에서 “받는다”란 헬라어 동사는 람바노란 단어가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어떤 목적을 위해 “취하다” “잡다” “갖다“란 의미가 있는 동사이다.
신약 성경에서 “성령을 받는다”란 표현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동사이다.
역시 여기에서도 구체적 소유를 의미하는 동작의 동사가 사용되었다.

사도행전 9:17: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다메섹의 아나니아란 주의 제자가 잠시 눈이 먼 바울에게 한 말이다.
여기서 “충만하게 한다.”란 동사는 헬라어 핌플레미란 단어로 “용기에 가득 채운다.“,
혹은 “특정 장소에 사람이 채워진다“란 의미로 사용된다.
즉 가득 찬 상태를 만드는 동작의 동사이다.
단순히 관념이나 느낌을 표현하는 단어가 아닌 충만한 상태를 만드는 동작을 의미한다.

사도행전 15:8: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베드로가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도와 장로 앞에서 “이방인에게도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어
그들을 구원하게 하신다.”라고 증언하는 말씀이다.
여기에서도 성령을 “주어”란 단어에서 헬라어 동사 디도미란 단어가 사용되었다.
이 단어 역시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주다‘, ‘공급하다‘”란 의미이다.
구체적인 물건이나 내용물을 제공한다는 행위를 나타내는 동사이다.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성령을 받고 광야로 나가실 때
다음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였다.
마가복음 1:12: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에서 사용된 헬라어 동사는
엑발로란 단어로 때로는 복음서에서 “귀신을 내쫓다”란 단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즉, 이 단어는 엄청난 힘이나 권세로 대상물을 강제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여기에서 예수가 세례 후 광야로 나가심이 자신의 의지가 아닌 외부의 힘으로 나타난 결과임을 보인다.

갈라디아서 5:25: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에게 성령의 열매를 언급한 표현이다.
즉, 성령으로 살면 그 행위의 결과는 성령에 의하여 나타난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사용된 성령으로 “행한다.”란 단어인 헬라어 스토이케오란 단어는
군대나 개인이 특정 목적을 가지고 앞으로 나간다 혹은 걸어간다“란 의미가 있다.
성령으로 행한다는 의미는 무작위로 자신의 의지로 하는 동작이 아닌
특정 목적을 가지고 앞으로 나가는 동작”을 나타낸다.

이렇게 성령의 역사는 단순히 감정이나 관념, 혹은 심리적 상태를 묘사하는 단어가 아닌
매우 구체적 행위의 동작을 나타내는 단어로 외부의 힘이나 권세의
주체에 따라 대상이 능동이 아닌 수동의 자세로 어느 상태가 되는 장면을 나타낸다.
또한, 성령의 열매나 행위의 결과 역시, 자신의 의지나 주체적인 관점에서 행동을 표현하지 않고
외부의 능력이나 힘으로 어쩔 수 없이 나타난 결과를 의미한다.

쉽게 현대의 상황으로 표현하면 “마치 무당에 신이 내리는 장면“과 같다.
마가복음에서 예수가 회당 안에 귀신들린 자를 만날 때
마가복음은 헬라어로 “엔 푸뉴마 아카타르토스:악한 귀신 들린“이란 표현을 사용하였다.
아카타르토스란 더러움을 의미하는 형용사를 빼면 이 표현은 성령에 놓인 사람을 표현한다.

성령을 받았다는 신약에서 표현은 우리가 교회에서 자주 듣는 단순한 상태나 느낌,
상태를 표현하는 단어가 아닌
외부의 능력으로 매우 구체적 수동적 경험을 나타내는 단어로 표현되었다.
결국, 성령의 사람이란 하늘의 권세를 가지고 이 땅에서 종말론적 자세로 삶을 사는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