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페컴(Mary Peckham) 여사는 1932년 스코틀랜드 지역의 루이스섬에서 출생하였다.
그곳의 기독교 문화권에서 양육과 교육을 받았지만 루이스섬 부흥에서 진정 하나님의 영을 받아 구원을 받았고
그 후 1886년에 설립된 스코틀랜드 개신교 연합 선교회 단체인 페이스 선교회(The Faith Mission)에서
선교사로 활동을 하였다. 2010년 8월에 여러 성도의 시편 23편 찬송을 들으면서 소천을 하였다.
그녀는 생전에 자신이 루이스 부흥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무엇인지
자신의 삶에서 체험한 기적을 간증하며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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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편 126)

저는 헤브리디스 제도의 루이스섬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곳은 스코틀랜드 최 북서쪽 지역의 래스곶(Cape Wrath)에서 서쪽으로 40마일 떨어진
일련의 섬으로 헤브리드 제도의 가장 북쪽에 있는 지역의 섬입니다.
제 집은 어촌지역이고 섬의 맨 끝에 있는 등대로부터 2마일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저는 집에서뿐 아니라 친구 집 혹은 할아버지 집에서 드리는 가정 예배에도 참여하였습니다.
제 기억에는 마을의 여느 집에서 매일 아침에 이러한 가정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마을의 모든 사람이 교인은 아니었습니다.
마을의 부모들은 하나님 안에서 양육과 두려움, 그리고 훈계로 자신들의 자녀를 양육하겠다고
마을 교회에서 약속하였고 각 가정의 가정예배는 이러한 약속의 중요한 실천으로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저희 집을 포함하여 많은 회심하지 않은 부모들도 가정에서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는 생활은
그들의 자녀에게 유익이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심지어 루이스섬의 학교에서는 매일 아침에 주기도문과 성경 이야기,
그리고 짧은 장로교 교리 문답으로 수업을 시작하였습니다.
방과 후는 학교에서 배운 시편 구절을 암송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기에 외부인이 보기에는 저희 마을 사람들은 성경 말씀에 능통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십계명을 암기하였고 이사야 53, 55장 그리고 산상 복음 고린도 전서 13장과
그 외 성경의 많은 내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마을에서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있었습니다.
후에 루이스섬에 성령께서 임하실 때, 많은 사람이 듣고 암기한 말씀은 타오르는 불의 연료로 사용되었습니다.
루이스섬에서 하나님의 사람 중에 많은 사람의 영적 상태에 아쉬움을 가지며 지역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열망하고 간구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람은 주님의 은혜에 굶주려 있었습니다.

루이스섬에서 부흥이 일어났을 때 저는 스코틀랜드 본토에 있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특별하게 교회에 관심이 있지 않았습니다.
딱 한 번 주일 학교에 참가하였는데 내가 보기에는 장로의 기도가 너무 길어 다시는 교회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루이스섬에서 부흥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부흥이 끝날 때까지 고향에 가지 않겠다고 즉시 결심을 하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미 충분하게 종교적 열기에 놓여있었기에 저는 부흥에 상관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게일어(Gaelic)로 노래하는 가수가 되고 싶은 저 자신의 인생과 야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세상은 육신의 즐거움으로 가득 찬 곳이지 하나님과 교회와 연관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살면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곳은 단지 저 혼자가 아닌 다른 많은 사람도 같이 가기에 저는 별로 이 문제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어느 때에 하나님께서 제 인생에 오셔서 나를 구원하신다면
그 일은 그분의 일이지 제가 상관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로는 하나님의 역사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전화 한 통이 이런 제 모든 삶을 바꿔 놓았습니다.
부모님이 편찮으시기에 즉시 루이스섬으로 오라는 통보였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건강을 걱정하였습니다.

루이스섬에 도착하니 부모님은 건강 상태가 호전되어 교회에 참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을의 모든 관심사는 부흥 집회에서 발생한 여러 간증과 집회 기간 중에 발생한 사건이 화제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분위기가 싫었고 휩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마을 사람들의 대화에서 어떤 술 중독자가 부흥 집회에서 회심하여
지금은 기도 집회에 참석한다는 말을 듣고 내심 불안하였습니다.
저는 더욱 이런 분위기에 저항하였고 심지어 두려워서 분노까지 치밀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제 삶에 상관하시어 어떤 말을 하실 것 같아 두려웠습니다.
저는 그분이 제 인생에 참여하시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저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면 지금 말고 제 인생의 마지막 때에 구원해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현재 저에게는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부모님은 저를 찾으시고 만일 제가 집회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당신들도 참석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으셨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채로 할 수 없이 교회로 향하였습니다.

교회는 많은 사람으로 붐볐고 그 분위기는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교회로 향하는 진입로에 들어서자 사람들은 침묵의 무게를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교회 건물 내로 들어서고 천천히 의자로 가서 조용히 앉았습니다.
예배가 시작하기 전에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회심하지 않는 방문자에게는 교회의 이런 분위기는 어느 정도 불편함마저 주고 있었습니다.

모든 참석자가 애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시편 말씀을 찬양하자
저는 등골이 오싹함을 느끼면서 마치 궁지에 몰린 기분이었습니다.
설교하기 위하여 던컨 목사가 의자에서 일어나자, 그의 얼굴을 처음 보았는데 추호의 의심 없이
그가 매우 신실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의 설교 내용은 부드럽지 않고 오히려 듣기에 부담을 줄 정도로 무거웠습니다.
그의 선포에서 지옥과 죄란 단어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마치 현실을 나타내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스도 없는 우리의 상태는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 그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날 밤, 집회 후 저는 멍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온 후 아버지는 저에게 “메리 오늘 집회에서 은혜를 받았니?” 질문을 하였고
저는 “전혀 받지 못했어요.”라고 퉁명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제 대답은 진실이었습니다.
전 던컨 목사의 설교나 예배 분위기에서 전혀 어떤 감흥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집회에서 발생한 놀라운 일조차 저에게는 전혀 새로움을 제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다음 날 저는 그 집회에 다시 참석하였습니다.
이제는 저희 부모님이 저에게 집회에 같이 가자고 더는 요구하지 않았지만,
저는 계속하여 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마치 제 의지에 거슬려 스스로 교회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교회까지 거리가 약 4킬로 이상의 거리였지만 저 의지와 관계없이 제 발은 교회로 몰고 갔습니다.

이렇게 계속하여 집회에 참석한 어느 날, 예배 중 저는 어머니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좋아, 설사 구원의 역사가 우리 가정에 일어나지 않아도 그렇게 실망하지 않을 거야.
난 있는 그대로 현실을 받아들이겠어.’

그날 밤 집회에서 어머니는 손수건을 꺼내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고 계셨습니다.
예배 후 집에 돌아온 후 저희 가정은 무거운 침묵으로 그날 밤을 보냈습니다.
저희 가정은 마치 꿈속에서 행동하는 것처럼 아무 말 없이 거동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임재의식은 교회뿐 아니라 집과 이웃에게서 강하게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 마을 곳곳에 임재하신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는 저는 아버지 침실 문 밖에서 그렇게 무뚝뚝한 어부가 성경에 작성된 공중 기도문을
통곡하면서 읽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오 하나님”
그렇게 외치면서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과 함께 아버지는 마을 청년들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고 계셨습니다.
집에서 이렇게 부모님이 충격적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보고 어둠의 비탈길에서
끝없는 지옥으로 계속 미끄러지는 제 모습을 보면서 의자에 앉아 두 손으로 의자 깔개를 꽉 잡고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부흥의 기간에 사람들은 전에는 흥미가 있을 다른 사람의 사사로운 삶의 소식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자신의 영적 상태에만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어느 날 밤, 그렇게 오랫동안 교회에서 성경에서 그렇게 많이 들었던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가 진정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제 생명을 구원하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교회에서 집회가 끝난 후 오두막집에서 열리는 소규모 모임에 참석하였습니다.
참석한 사람들은 서로 함께 있고 싶어 모임은 밤새도록 진행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너무나 훌륭하고 장대한 광경이었지만 또한 큰 두려움도 함께 있었습니다.
특히 저는 매우 큰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날 밤, 오두막집 모임에서 자신의 영혼 구원에 관하여 걱정하는 사람을 위하여 따로 마련된 방에서
던컨 목사와 함께 기도하자고 여러 사람이 호소하였습니다.
저는 무지하게 그 호소의 내용의 참뜻을 깨닫지 못하고 ‘또 다른 모임이 있어? 좋아 한번 가보자’라고 생각하며
따로 마련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방에는 이미 제 어린 시절의 친구 두 명이 바닥에 앉아서 가슴이 미어지도록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저는 아직 그들같이 간절한 마음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던컨 캠벨 목사는 어느 사람에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당신은 진실로 진지하게 당신의 구원자로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합니까?”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저 목사님이 다음에는 나에게 저와 같은 질문을 할 것 같은데 뭐라고 대답을 하지?
내가 아니라고 대답하면 던컨 목사님은 나에게 그럼 이 기도 모임에 왜 참석했냐고 추가 질문을 할 것 같은데….’

이렇게 생각한 끝에 괜스레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던칸 목사의 질문에
“네 만나고 싶습니다” 대답을 하였습니다.
이런 대답을 하고 속으로 죄를 짓는 느낌이 들었고 저 자신이 위선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제 마음 중심을 아셨습니다.
제가 무지하기에 진정 무엇을 구해야 할지 모르지만, 제 애타는 갈망을 살펴보셨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하나님 앞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던컨 목사가 함께 저희를 위하여 기도를 해 주신 후 저는 속으로 다음과 같이 생각을 하였습니다.
‘좋네, 어떤 사람이 나를 위해 이렇게 중보를 해주는 간구의 소리를 듣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이야….
이렇게 나를 위한 간절한 기도를 전에는 들은 일이 없는데….’
제 가슴은 던칸 목사님의 진정한 기도에 반응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알았습니다. 던컨 목사님은 저를 구원해 주실 수 없다는 사실을.(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