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나눔: 베드로전서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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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신의 저자인 베드로의 지난 행적을 잠깐 생각해 보자.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기록된 베드로와 관련된 이야기를 떠 올리면서 이 서신의 내용과 비교해 보면, 마가의 다락방 이후 베드로가 어떤 복음의 증인으로 변해갔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 사도행전 2:14-36, 2:38-40, 3:12-26 참조.
  • 이 서신은 소아시아에 흩어진 교회들을 향한 다소 일반적인 내용이며, 회람을 목적으로 한 서신임을 쉽게 알 수 있다 (1:1).
  • 전체적인 맥락은 이미 로마에서 시작된 신자들을 향한 박해가 이제 곧 소아시아 지역의 교회들에게도 임할 것을 예견하며 고난을 이겨낼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다.
  • 1장에서도 고난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하지만, 특별히 4:7 이후로 임박한 재앙과 고난에 대해 강조하며 어떻게 그 어려움을 이겨 내야 할 지를 이야기 한다.
    • 4:7 –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 4:12-13 –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 서신 서두에 자신에 대해 소개하는 내용이 빠져있음을 볼 수 있다 (바울 서신과 비교해서). 베드로는 바울과 달리 그의 사도권에 대한 의심과 논쟁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만났고 증인이 되었는지에 대한 변증없이 바로 본론을 시작할 수 있었다.
  • 1절. 베드로는 신자들을 “나그네” 혹은 “거류민”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 흩어진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 모두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시민권”을 받지 못한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많은 경우 그들의 믿음때문에 그곳에서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살 수 밖에 없었다.
  • 실제로 고향을 떠나 흩어져 살고 있는 이들도 있었고, 같은 곳에 살고 있지만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곳의 삶의 방식과 가치를 더 이상 따를 수 없는 신자들도 의미한다.
  • 그들에게는 당연히 매사에 불안과 불확실성에 힘들어 했고, 오직 믿음과 소망만이 그들에게 위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 베드로가 그들에게 서신을 보낸 이유는, 그들의 거처에서 시민이 되지 못하고 거류민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위로”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받은 복음이 얼마나 풍성하고 부요한지, 세상에서 누리지 못하는 많은 것들보다 훨씬 더 가치있고 견디어 낼 만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3)
  • 베드로는 거류민으로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부요함과 편안함을 약속하지 않는다. 현대 교회는 무엇을 약속하고 있는가?
  •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그들에게 소망을 안겨주며, 나그네로서의 삶에서 낙심하지 않고 택함 받은 자로서의 삶을 살아낼 것을 격려한다.
  • 나그네로서의 삶에서 오는 불평등과 불편, 가난, 차별에 대해 베드로는 예수를 소개하며 장차 누릴 영광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런 영광의 자리로 달려가는 신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인 삶의 지침까지도 제시한다.
  • 2절. 나그네가 된 그들을 베드로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세상에서는 나그네들이지만, 얼마나 그들이 복 된 하나님의 자녀들인지를 처음부터 이야기한다.
  • 2절의 내용이 얼마나 우리에게 감격과 감사로 다가오는가? 단순히 “기분좋은” 내용이 아닌, 우리의 존재를 걸고 기뻐하며 감사할 수 밖에 없는 내용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실제로 다가오고 이해되는 것은 우리가 “거듭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이 표현은 그저 “좋은” 표현에 불과할 것이다.
  • 2절에서의 표현을 자세하게 살펴보자.
    • “미리 아심”
    •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 “순종함”
    •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
    • “택하심” (ESV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NIV에서는 “chosen”)
  • 2절의 이 표현들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와 열심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 2절에서 보이는 하나님의 열심과 구원의 열심에 감격할 수 있음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지 아닌지를 가늠할 수 있는 한 척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절에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시작하셨고, 방편을 만드셨으며, 그 방편이 얼마나 위대하며 (독생자), 어떻게 그 시작하신 것을 하나님께서 끝내실 것인지를 이야기 한다.  구원에 관한 택함과 이루심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인 것이다.
  •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나그네로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우리는 어떤 갈등과 고민을 하고 있는가? 2절에서 보이는 그 구원의 풍성함과 위대함을 더 발견하는 가운데 우리는 그 싸움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구원의 시작과 끝은 하나님께 있다.
  • 3절을 과정과 목적으로 분리해서 읽어보자.
    • 긍휼 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à 부활
    • 부활 à 우리의 거듭남 à 산 소망 à 멸하지 않는 유업 (이미 하늘에 간직)
  • 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산 소망을 가지게 하셨다고 한다. “산 소망”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 빌2:12-13.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 갈5:16-18.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 “산 소망”을 가진 자는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중생한 자를 의미한다. 이 소망은 중생하지 못한 자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는 것이지만, 중생한 자에게는 한 없는 감격과 기쁨의 제목이 되며 현재의 고난을 능히 이길 수 있는 힘이 된다.
  • “산 소망”은 육체의 소욕의 반대가 되는,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 분별하게 된다. 지금 나를 인도하고 이끄는 힘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산 소망” 아래 살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의 소망 아래 살고 있는가?
  • 5-6절. 베드로는 구원을 미래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being guarded through faith for a salvation ready to be revealed in the last time”)
    • 그렇다면 현재는 무엇인가? – 미래의 구원을 위해 보호받고 있는 시점.
    • 구원은 마지막 날에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 “시험”은 “잠깐”이며 “기뻐”할 이유가 된다.
  • 7절. “믿음의 확실함” – “tested genuineness of our faith.”  즉 믿음이 여러 고난과 시련을 통과함으로 그 진위가 가려진 상태이다.
  • V8-9. 영혼의 구원이 미래로 표현되어 있고, 현재의 삶은 “시험”과 “근심”으로 묘사되고 있다.
  • 세상의 흐름에 대해 불편함을 가지게 되고 고난으로 까지 연결이 된다면 그것을 인내해 낼 것을 베드로는 권면한다. 물론 그러한 시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소망하는 것에 근거해야 하는 것이다 (8절: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 8-9절에서 보듯이, 당시 이 서신의 수신자들도 예수님을 두 눈으로 보고 목격한 증인들이 아니었다. 다만 그들은 “들음”을 통해 한번도 만나지 못한 예수를 “사랑”한다.  이것을 베드로는 “믿음”이라고 부르며, 그 믿음의 결국이 구원이라고 격려하는 것이다.